올해 수출 부진 속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친 소비가 내년에는 꺾일 전망이다. 고금리·고물가 등 소비를 위축시킬 악재가 수두룩한 탓이다. 최근 수년간 경제정책방향에 내수진작책을 비중 있게 담아왔던 기획재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13일 기재부에 따르면 이달 말 발표할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선 이전보다 내수·소비 분야 지원 강도가 낮아진다. 여기에는 내년 1분기까지 5% 안팎으로 예상되는 고물가 국면에서 소비 진작책을 섣불리 내놨다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윤석열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달라진 점, 최근 소비 지표가 나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 정부는 재정 확대 기조가 모토였지만, 현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코로나19 기간에 민간 소비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플러스(+)인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실제 소비는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게 소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성장 기여도를 살펴보면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2.0% 포인트인 반면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8% 포인트였다. 내수 중에서도 민간소비 기여는 0.8% 포인트로, 전체 성장 흐름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꺾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총 소비에서 60%가량을 차지하는 서비스 소비는 코로나19 확산기에 억눌렸던 소비가 살아나는 ‘펜트업 효과’ 덕분이었지만 이런 현상은 곧 약화될 전망이다. 국책연구원 한 관계자는 “고금리·고물가 영향 때문에 원래 서비스 소비가 회복돼야 했던 수준보다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상품소비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앞서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외부 활동이 막히면서 서비스 소비가 크게 감소하는 대신 내구재·준내구재 소비가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일어났었다. 다른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이미 내구재, 준내구재, 비내구재 순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사이클은 끝났다. 또 시중금리 인상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내구재 소비가 하락하는 상황은 악재”라고 말했다.
이미 소비자심리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2분기 100.9를 기록했지만, 9월(91.4), 10월(88.8), 11월(86.5)로, 내리막길에 진입했다. CCSI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치(2003~2021년)와 비교해 소비심리가 낙관적인 것을 뜻하며,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2분기보다는 3분기, 3분기보다는 4분기 소비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는 코로나19 확산기에 발표됐던 경제정책방향에서 내수진작책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왔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차량 구매 개별소비세 인하, 분야별 할인·소비쿠폰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수진작책 마련에 회의적인 기류가 강하다. 2018년 7월부터 시행돼 올해 말 종료 예정인 차량 구매 개소세 인하 조치의 연장 여부도 막바지까지 검토를 거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당장 경제정책방향에 내수진작책을 담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물가가 좀 가라앉은 뒤에 별도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