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금융산업에선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근본 원인은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인사들의 회전문식 낙하산 인사와 ‘관치’에 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국가를 부도 직전까지 내몰고 은행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업 사태를 야기했음은 25년 전 외환위기 때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에서도 이런 폐습이 더 노골화할 조짐이어서 우려스럽다. 그제 농협금융이 7대 회장에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의 선임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캠프를 거쳐 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지낸 그가 선임되자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낙하산 인사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가 행동에 나선 건 농협금융뿐 아니라 앞으로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권 최고경영자들이 정부 입김에 줄줄이 교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돌연 3연임을 포기한 건 당국에서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또 김지완 BNK지주 회장 후임엔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과 옛 재정경제부 출신인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중순 윤 대통령 측근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내년 3월 임기 만료되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박을 하면서부터 감지됐다. 손 회장 후임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 거론된다. 금융지주 주식 1주도 소유하지 않은 금융 당국 수장 한마디에 금융권이 회장 물갈이 공포에 싸이는 건 금융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음을 뜻한다.
금융위원회는 보험 증권 등의 금융사를 거느린 삼성 한화 등 자산 5조원 이상 7개 재벌의 금융 건전성을 관리해온 ‘금융그룹감독혁신단’을 해체한다고 한다. 최근 자금난으로 제2 금융권 관리 강화가 더 절실한 시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금융권은 옥죄고 재벌 압박은 풀어주는 것도 민간 주도 성장 기조의 일환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