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까지 510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고용노동부가 11월 7일에 발표한 ‘22년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그렇다. 노동자들은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고, 뒤집히고, 물체에 맞아 사망했다. 올해 시작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렇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다. 37.3%가 큰 기업에서 발생했다.
11월 말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선진국은 이미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중대재해 감축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 사전예방에 중점을 두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발표한 로드맵 첫 번째 전략은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해 위험성을 평가하라는 거다.
입을 맞춘 듯 며칠 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중대재해법은 건설업체 측에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며, ‘몇백개의 공사 현장 중 어느 현장 하나에서 문제가 생기면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사업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그리하여 그는 사업 단위나 공사 현장 단위 등으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 정상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망자 수의 1만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사망만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나라 중 34위인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을 걱정하는 대신 몇백개의 공사 현장을 거느린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걱정하는 것이 ‘정상화’라는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극소수 강성 귀족노조 수뇌부가 주도하는 이기적인 집단행위’라고 규정했다. 화물연대가 2주 동안 파업함으로써 주요 산업의 손실액이 3조5000억원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2022년도 대한민국 장관은 약 1억4000만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는다. 대통령 연봉은 2억4000만원이 넘는다.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는 화물운송 노동자 가운데에서도 임금이 높은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400만~600만원 선이라고 쳐도 대한민국 장관이 받는 임금에 비하면 3분의 1 내지 절반도 안 된다. 대통령 연봉과는 물론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2주 파업한 손실액이 3조5000억원이라면 장관이나 대통령이 마땅히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고 응당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아 생기는 손실액은 과연 얼마나 되는 건지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 위협과 견주었다.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와 같은 불법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진짜 악순환은 이런 것이다. 158명이 죽은 이태원 참사에 ‘경찰과 소방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행안부 장관의 말,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라고 되묻거나 기록적인 수도권 침수에도 ‘퇴근할 때 보니 침수가 시작됐더라’는 대통령의 말. 한 해 동안 국민 앞에서 끝없이 이어진 이런 말들도 심각한 중대재해가 아닐까?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한 해가 가고 있다. 새해에도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당신들도 배워야 할 때가 온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