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정기국회가 끝났다. 여야는 정기국회 시작부터 싸우기 시작해 마지막 날까지 극한 대립을 이어갔다. 결국 내년도 예산안은 정기국회 내 처리되지 못했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 8월 30일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새 사령탑에 오른 이재명 대표는 전화로 “빠른 시간 내 만날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초당적 협력’을 부탁했고, 이 대표는 “윤 대통령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덕담했다.
안타깝게도 허니문은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끝났다. 정기국회 첫날인 9월 1일 이 대표가 최측근인 김현지 보좌관으로부터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됐다. 김 보좌관은 이 대표에게 검찰의 출석요구서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전쟁입니다”라고 적었다.
이후 정부·여당과 야당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야당은 이 대표 등 야권 인사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했고, 여권은 범죄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일 뿐이라며 민주당의 모든 행위를 ‘이재명 방탄’으로 몰아세웠다.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며 맞불을 놨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 최측근(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구속을 고리로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 ‘비속어 논란’으로 여야는 거세게 충돌했다. 민주당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그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단독 처리했고, 윤 대통령은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다.
여야 간 갈등은 민주당이 지난 11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우기 위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면서 정점을 찍은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 처리를 이유로 지난달 하순 우여곡절 끝에 합의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보이콧까지 검토 중이다.
대통령실은 3개월도 안 돼 또 올라온 장관 해임건의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어떤 입장을 내놓을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쯤 되면 여권도 야당도 서로를 정치의 ‘파트너’로 여길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국민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이렇게 사생결단하듯 싸우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여도 야도 자신의 지지층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매주 발표하는 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9월 첫 주 이후 지금까지 24%에서 33% 사이에 머물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의 지지율도 31%에서 38% 사이에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이나 여당과 야당이 무엇을 하든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30%대 안팎의 지지층만 의식하다 보니 숨어 있는 ‘진짜 민심’은 읽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기관차’가 끄는 열차나 ‘민주당 기관차’가 끄는 열차, 그 어디에도 탑승하지 않은 국민은 답답하다 못해 불안하다. 두 대의 폭주 기관차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가 과연 충돌 전에 멈출 것인지, 아니면 종국에는 충돌로 파국을 맞을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더 늦기 전에, 두 기관차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것만은 이제 멈춰야 한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