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기획재정부 출신 이석준(아래 사진) 전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 낙점됐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불발로 예고된 신(新)관치 금융이 본격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금융기관 수장 인사를 앞두고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비롯한 금융권 ‘올드 보이(OB)’의 귀환이 줄줄이 예고돼 있어 낙하산 근절을 외쳤던 윤석열정부 역시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농협금융은 12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손병환 현 농협금융 회장 후임에 이 전 실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임추위는 심층 면접을 거쳐 위원 만장일치로 이 전 실장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임추위는 “금융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협금융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10년을 설계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인 손 회장은 올해 역대급 실적을 냈다. 또 김용환 김광수 전 농협금융 회장 등이 임기를 연장했던 사례에 비춰 1년 임기 연장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됐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선 캠프의 1호 영입 인사였던 이 전 실장이 급부상하면서 관치 금융 논란이 커졌다. 여기에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확보한 농협중앙회의 기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위한 법 개정과 각종 사업 추진을 앞둔 농협중앙회가 현 정부에 지분이 있는 이 전 실장을 ‘모셔와’ 현 이성희 회장 연임을 노린다는 해석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이 전 실장은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발을 디딘 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을 거쳐 박근혜정부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윤석열 대선 캠프 출범 초기 정책 초안을 설계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맡았다.
관치 금융 바람에 관 출신 OB들의 주가도 들썩이고 있다. 내년 1월 초 임기를 마치는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후임에는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과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포함해 모피아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현재 공석인 BNK금융지주 회장 후보로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거론된다.
현 정부의 금융수장에 대한 관치는 직접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문제 있는 이들은 골라낸다는 식이다. 지분이 없는 금융지주 회장들이 재벌 오너들처럼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는 데 대한 반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주사들이 현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를 추천하는 ‘알아서 기는’ 행태가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내년 3월 두 번째 임기 만료를 앞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도 불투명해졌다는 시각이 많다. 벌써 손 회장 후임으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이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금융권 모피아 낙하산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낙하산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