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월북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 공소장에는 2020년 9월 당시 국가가 국가의 임무를 다했느냐는 지적이 담겼다.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령이 정한 대로의 자국민 보호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살리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난이 예상되자 사건 은폐와 월북 몰이에 나섰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우리 사회에서 월북자와 그 가족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된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지난 9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각각 기소하면서 이씨의 월북 의사를 단정할 근거가 부족했음을 6~7가지의 이유로 설명했다. 실종 지점부터의 먼 거리, 낮은 수온, 장비 상황,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북측의 ‘국경지대 무조건 사살’ 지시 등을 종합하면 해양 전문가인 이씨가 30㎞ 이상 헤엄쳐 이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검찰은 이씨의 실종 당시와 유사한 조건의 해역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9월 현장조사도 진행했다. 이 근거들은 당시 정부가 생산한 ‘자진 월북’ 자료들을 허위공문서로 판단한 근거가 됐다.
검찰은 지난 정부가 자국민 보호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국민적 비난이 예상됐다는 점을 범행 동기로 본다. 이씨의 피살 및 소각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진 2020년 9월 23일 밤 11시 이후 자진 월북 규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씨 실종 직후 국가기관들이 정확한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점, 해경이 이씨의 사망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최초 실종 지점을 기준으로 수색을 이어간 점, 서 전 실장이 하급자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고집한 점 등도 석연찮은 정황으로서 공소장에 담겼다.
검찰 관계자는 “월북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나와 있지 않고, 배치되는 내용이 오히려 많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월북했다’의 참·거짓을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가능성이 작았음에도 ‘월북했다’고 단정한 것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서 전 실장과 김 전 청장의 공소장에는 월북이라는 낙인이 낳는 고통도 기재됐다고 한다. “월북자와 그 가족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검찰이 월북 몰이를 국가의 조직적 중대범죄로 지적하고 진보 정치권이 반발하는 장면에 ‘아이러니하다’는 반응도 있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국익을 개인에 우선했던 것이 전통적 공안의 시각이었고, 국가가 함부로 월북과 간첩을 말한다며 지적한 건 진보 진영의 시각 아니었느냐”고 반문했다.
서 전 실장 측은 “검찰의 전격 기소는 구속적부심 석방을 우려한 당당하지 못한 처사”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사건을 은폐하거나 월북으로 몰아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입장도 고수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영장심사 과정에서 제시한 ‘대통령 보고 문건’과 관련해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을 재개했다. 이 문건은 “북측이 이씨를 구조할 것이라 판단했다”는 내용인데 검찰이 그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유족은 국가안보실 등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음에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다”는 이유로 아무런 자료를 얻지 못했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