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신협 등 상호금융권 일부 지역 조합들이 고금리의 특별판매 적금 상품을 팔다가 과도한 자금이 몰리자 뒤늦게 고객들에게 적금 해지를 읍소하고 있다. 한 조합에선 고객 계좌를 사고계좌로 만들어 추가 입금을 차단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고금리 특판 상품에 대한 금융당국의 선제적 리스크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지역 조합은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고객들에게 적금 해지를 요청하고 있다. 연 7~10%대 고금리 적금을 팔았다가 이자 부담이 커지자 읍소 전략을 들고나온 것이다.
동경주농협은 지난달 25일 연 8.2% 적금 특판 상품을 내놨는데 직원이 한도를 설정하지 않으면서 약 5000억원의 예수금이 모였다. 남해축산농협이 이달 1일부터 비대면 판매한 ‘NH여행적금’에는 1400억원이 몰렸다. 마찬가지로 직원 실수로 가입 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데다 최대 연 10.35%라는 고금리를 내걸면서 고금리 상품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금리 노마드족’이 몰린 결과였다. 지난 5일 마감된 합천농협의 연 9.7% 적금에도 1000억원이 모였다.
문제는 이들이 수천억원의 예수금에 대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영세한 규모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1000억원에 대한 이자만 연 수십억원이 발생하는데 이들 조합의 현금성 자산은 20억원도 채 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뒤늦게 실수를 알아챈 조합들은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 적금 해지를 권유하고 있다. 제주 한 신협에선 고객 계좌를 사고계좌로 만들어 입금과 이체가 차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해당 신협에선 더 이상 자금이 몰릴 경우 후폭풍이 예상돼 부득이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로 상호금융권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객이 잘못하면 고객 잘못, 은행이 잘못해도 고객 잘못이냐”는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른 은행 예·적금을 깨고 갈아탄 경우나 해당 특판에 가입하기 위해 새로 입출금 계좌를 만들면서 ‘신규 계좌 20일 제한’을 받게 된 고객들 불만은 더 크다.
다만 고객 자금이 순식간에 증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적금 해지율이 40~50%에 달하고 있는 데다 각 상호금융 중앙회가 지급준비금을 확보해 놨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협중앙회는 개별 조합에 자기자본의 5배 수준까지 긴급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조합이 파산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다른 조합이 인수·합병하도록 유도해 고객 자금은 보호된다.
금융당국은 사태 파악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모든 상호금융업계에 특판 금리, 한도 등 관련해 어떤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답변 내용을 바탕으로 후속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와 지난 8일 대면 회의를 열고 지역 조합의 과도한 금리 제공을 전산 시스템으로 제한하는 방식 등을 협의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