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 오래전 어느 저명한 경제학자가 한 말이라는데 지금처럼 잘 들어맞은 적이 없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아파트를 사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투자에는 공짜가 없는 것이다. 생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공해를 조금 발생시켰어도 수출을 많이 하면 표창도 받았는데, 지금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배가 불렀다고, 반기업적이라고 볼멘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에 관한 한 사람들의 태도는 확고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날씨가 너무 이상해져서 생활이 고통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를 막아 보려는 노력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관련 국제회의가 계속 개최되는가 하면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기대에 못 미쳐서 결국 힘 있는 국가들이 나서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탄소국경세가 그 시작이 될 것 같다.
날로 심각해지는 이상기후
금년에는 기상이변이 끊이지 않았다.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긴 파키스탄이나 강바닥까지 말라버린 유럽의 가뭄이 바로 올여름 일이었고, 폭염과 혹한과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이상기후의 원인이 온실가스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이에 2015년 196개국 대표가 파리에 모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협정에 서명하였다. 앞으로 지구표면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1.5도 이내로 막기 위해 각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도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서게 되면 (그때 온실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고 해도) 기온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도 각국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무관심 탓에 지구온도는 계속 올라만 갔고, 금년에는 1.15도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감축, 노력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도 세계 각국은 남탓 공방만 하고 있다. 지난달 이집트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도 큰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개도국들은 그간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선진국이 기후위험에 노출된 국가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선진국들은 이를 무시하려는 실랑이가 반복된 것이다. 이를 두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라며 개탄하였다.
사실 산업발전에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환경오염은 이른바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ies)라고 해서 경제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는 세금과 같은 강제적인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만일 어떤 국가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숨 쉬는 문제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국가는 공해유발제품의 생산을 오히려 장려하는 정책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그래왔고, 지금 중국이나 인도 등 대다수 신흥국이 그러고 있다. 그 누적적인 모습이 COP27에서의 책임 공방으로 나타난 것이다. ‘너는 했으면서도 왜 나는 못 하게 하냐? 지금 과거 문제를 따질 때냐?’ 등등.
민간의 자율적인 노력도 어려운 상황
국가 간 비난과는 별개로 더 나은 환경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만 가고, 이를 반영하는 듯 기업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ESG 경영이다. 4~5년 전에 세계 유수의 투자회사와 대기업들이 기업의 목적은 단기이익 추구가 아니라 장기에 걸쳐 고객,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ESG 경영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이의 실천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유럽기업 다농(Danon)은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 이자를 할인해주었는데, 불과 3년도 안 되어 이를 추진한 CEO가 교체되었다. 기업실적이 경쟁사에 못 미친다는 이유였다. 사실 기업들은 ESG를 대외홍보용으로 사용할 뿐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ESG라는 것이 장부에 잡히지 않는 간접비용까지도 기업의 비용으로 인식하여 경영하겠다는 것인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비용증가-수익감소를 감수하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전략하에서 이를 실천하는 남다른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기업들로서는 실행하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 탄소배출 감축 시스템, 탄소국경세
그렇다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힘센 몇몇 국가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6월 유럽의회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현재 EU 각료회의에서 그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이 제도는 탄소배출 감축에 적극적인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조공정을 친환경적으로 바꾼 기업과 환경을 오염시키며 값싸게 제품을 생산한 기업이 경쟁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제까지 환경오염 방지에 많은 비용을 들인 유럽은 산업용품을 수입할 때 탄소처리비용을 관세 형식으로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유기화학물질, 플라스틱 등 총 9개 업종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4년간 시범 운영을 거쳐 2027년에 정식으로 개시된다고 한다. 유럽만이 아니다. 지난주에 미국 행정부는 탄소처리가 미진한 국가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수입할 때 고율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항은 유럽과 공동으로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아마도 내년에는 이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 같다. 모르긴 해도 탄소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국가는 국제무역에서 불이익을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제 우리도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를 오가며 이익을 따먹는 행태를 버릴 때가 되었다. 어차피 줄여야 할 탄소배출이라면 앞장서서 치고 나가는 게 어떨까? 연연해 하다가는 공짜 점심은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밥상도 빼앗길 판이니 말이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