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도 진보도 증오로 얼룩… 대선판 댓글창은 혐오 전쟁

입력 2022-12-12 00:04 수정 2022-12-12 00:04
유례없는 팬데믹에 치러진 20대 대선은 0.73%p차 초박빙 승부였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에 제약이 컸던 시기, 누구나 접근이 용이한 포털 뉴스 댓글창은 여론을 가늠할 창구로 여겨졌다.

국민일보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팀과 2021년 1월~지난 6월까지 네이버 기사 약 537만개에 달린 1억2114만여개의 댓글을 분석했다. 빅데이터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한 진영 싸움이 펼쳐졌음을 드러냈다. 여야 할 것 없이 상대 후보를 증오하고 비난을 퍼붓는 '혐오 정치' 양상이 뚜렷했다.

기사 내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댓글도 있지만 기사와 상관없이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헤비댓글러들이 포착됐다. 사안마다, 때론 같은 사안에도 시기별로 다른 반응을 내놓는 댓글러들의 이중적인 행태도 드러났다. 빅데이터는 포털의 뉴스 댓글창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론장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19와 대선 이슈가 겹친 지난 1년 6개월간 네이버 뉴스 댓글창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백신’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의 중심 소재로, 물량 수급과 부작용 논란 등에 휩싸였던 백신이 전국민적인 관심사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 심리는 정권 말,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정파 갈등으로 폭발했다. 지난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당시 대선 후보들이 방역 이슈를 놓고 각축을 벌이면서 백신은 상대 정치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2021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네이버 기사 약 537만개에 달린 1억2114만여개의 댓글을 종합해 ‘토픽모델링’ 분석한 결과 대상 댓글 51만882개 중 27만8919개(54.6%)가 ‘백신’ 관련 댓글로 집계됐다. 토픽모델링은 다수의 댓글에서 맥락이 비슷한 댓글들을 모아 추려내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분석 기법이다.

특히 정치 분야 뉴스 중 ‘백신’ 키워드가 포함된 댓글을 보면 대선 직전이던 지난 1월~3월 1만1800개, 1만3813개, 1만667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월평균 4270.5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2~3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이 시기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비과학적 방역’이라고 비판하며 방역패스와 영업시간 제한 폐지 공약을 꺼내든 시점이다.

사회 분야에서도 백신 관련 댓글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정부의 새 방역 대책이 발표된 시기에 급증했고 많은 공감을 받았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된 2021년 8월(1만2411개)과 9월(1만699개)을 시작으로 방역패스 도입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재차 강화된 12월(1만6989개)과 1월(1만1048개)에 백신 관련 댓글이 폭증했다.

‘백신의 정치화’… 혐오로 물든 백신


해당 시기 ‘백신’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댓글 3개 중 1개는 ‘혐오 댓글’로 파악됐다. 백신 관련 전체 댓글 중 32.7%에 이르는 9만1094개에서 혐오 표현이 감지됐다. 그중 대다수인 7만550개는 악플·욕설이었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한 백신에 왜 혐오의 감정이 담기게 됐을까.

특이한 점은 맥락이 비슷한 댓글을 하나의 군집으로 묶는 AI 토픽모델링 분석 결과 정치 분야 뉴스 댓글에서 백신은 ‘안철수’ ‘윤석열’ ‘홍준표’ 등 당시 보수진영의 대선 후보군들과 함께 쓰인 경향이 확인됐다. 사회 분야 뉴스의 백신 관련 댓글에선 ‘접종’ ‘패스’ 등 방역 상황 관련 단어들이 함께 쓰였다.

이에 대해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1일 “당시 야당이 문재인정부의 백신 수급 정책과 부작용 사례를 놓고 공세를 취했기 때문”이라며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당시 정부·여당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표현이 댓글에 담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대선 정국에서 백신 이슈가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언급보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정치 세력 간 갈등의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4월 당시 문 대통령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화이자 백신 수급 문제가 불거지자 “백신 문제를 정치화 하지 말라”며 백신 확보 실패에 대한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이에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재난지원금을 선거 전 조삼모사식으로 나눠주고, 방역을 풀었다 조였다하며 방역을 정치화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라고 반발했다.

실제 당시 백신 관련 기사에서 높은 공감을 이끌어낸 댓글을 살펴봐도 지지 정당의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시 문재인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강하게 드러난다.

“유통기한 임박한 백신을 얻어와 놓고 자랑질”이라는 댓글에는 139개의 후속 댓글이 작성됐다. “업주와 손님들은 백신접종자인데도 왜 계속 통제하느냐. 충성스럽게 백신 맞은 사람들을 왜 계속 규제하며 가두느냐”는 댓글에도 82개의 대댓글이 달렸다. “대깨문(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일컫는 비속어) 전용 백신 나왔다. 중국 시노팜 백신만 맞아라”는 댓글에도 77개의 추가 댓글이 달렸다.

보수·진보 가리지 않은 혐오의 장


혐오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양 진영에서 혐오의 정도가 유사했다는 점은 두 정치인, 문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을 겨냥한 댓글의 데이터로 확인됐다. 분석 기간 윤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은 10535개, 문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댓글은 9518개로 비슷하게 집계됐다.

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의 39.0%(3621개)에 혐오 표현이 담겼고, 이 중 악플은 2844개에 달했다. 혐오 분류별로는 인종·국적 407개, 기타 144개, 지역 131개 순이었다. 윤 대통령 비난 댓글에선 54.9%(5781개)에 달하는 댓글이 혐오 댓글이었다. 악플은 4507개였다. 인종·국적 336개, 지역 335개, 여성·가족 189개 순이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전쟁처럼 치열한 대선판에서 상대 진영의 공격에 대응하는 비례 원칙이 적용된 것”이라며 “선거 초기 저강도 비판으로 시작한 공세가 격화 국면에 진입하면서 욕설과 인신공격을 쏟아붓는 양상으로 치달았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상대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난하는 댓글은 6404개였다. 두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적었고, 이 중 혐오 댓글은 33.4%인 2142개로 집계됐다. 지난 대선이 문재인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을 지니면서 여야 후보간의 경쟁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과 야당 후보의 결전 형식으로 치러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정치 부문 댓글 중 혐오의 감정이 두드러진 경우는 ‘노무현 비하’ 키워드가 들어간 경우였다. 이 경우 댓글 10개 중 7개가 ‘욕설’ 댓글이었다.

대선 후보 부인들도 악플러 시달렸다

‘역대급 박빙’ 타이틀이 붙은 지난 대선 시기엔 여성 혐오 양상까지 맞물리면서 대선 후보 배우자들에 대한 혐오가 뉴스 댓글창에서 두드러졌다.

분석 기간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언급된 댓글은 총 2344개로 집계됐다. 이 중 19.1%가 혐오 댓글로 분류됐다. 댓글 5개 중 1개가 혐오를 담은 댓글이다. 구체적으로는 악플·욕설이 386개(16.46%), 여성 혐오 발언이 29개로 뒤를 이었다.

김 여사가 언급된 댓글량은 지난해 1월~10월 월평균 36.7개에 불과했지만 같은해 11월 243개, 12월 376개로 급증했다. 올해 1월엔 350개, 2월 128개, 3월 275개로 대선까지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이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 관련 댓글은 2666개로 집계됐다. 혐오 댓글 비율은 18.49%(493개) 수준이었다. 분류별로는 악플·욕설이 368개로 가장 많았고, 여성·가족 혐오 댓글은 25개였다. 김씨가 언급된 댓글은 지난해 11월부터 본격 증가세에 접어들어 이듬해 2월까지 폭증했다. 대선 직전인 지난 1~2월 댓글 수는 1350개로 김 여사(478개)의 약 3배에 달한다.

이처럼 두 대선 후보 배우자가 혐오 대상이 된 것은 후보들과 별개로 주가 조작·부동산 투기·법인카드 유용 등 각종 의혹과 과잉 의전·허위 이력 논란 등 도덕성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다. 이 때문에 두 유력 대선 후보의 배우자가 연이어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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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김나래 조민영 나경연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