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일상에 신이 깃들게 하라

입력 2022-12-09 04:02 수정 2022-12-09 04:02

시집에 붙은 해설이 시만큼이나 화제가 된다. 진중해 읽기 어렵다는 평론집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신형철 평론가라서 가능한 현상이다. 살면서 느꼈던 난감하고 아득한 순간을 정확히 표현해줘 우리가 기다렸던 문장을 발견한 느낌마저 안긴다.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 이야기가 담긴 ‘인생의 역사’ 책은 한 해 저물녘, 인생을 생각하기에 적절하다. 게다가 나는 며칠 전 ‘구원에 대해, 차이를 발견해야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열린 그의 강연을 들었다. 영화 ‘패터슨’의 프리즘으로 투사해 풀어낸 강연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신이 찾아드는 순간을 생각하게 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총 여덟 편의 아침에, 시계는 조금씩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침대에서 막 눈을 뜬 부부의 자세는 매번 다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매일 같으면서도 다른 이 아침의 햇살 속에 존재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신성은 일상 속의 반복과 그 미세한 차이 속에 있다는 듯이 말이다.” 평론가는 신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신이 매번 다른 아침 햇살 속에 존재한다는 비유에 강연 듣는 마음이 뻐근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 보이는 버스 기사 패터슨은 시 쓰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 시집을 내려 하거나 남이 알아주는 시인이 되려는 목적은 없다. 그가 관찰하고 겪은 일상의 사소한 사건은 시어를 고르고 시를 완성해가며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어느 하루도 같지 않은 새로움을 만든다. “삶의 매 순간에서 그런 ‘반복 속의 차이’를 감지해낸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일상에 같은 시간은 없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는 것이다.” 평론가는 이 말로써 강연을 마무리했다. 일상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자발적 허무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똑같은 하루를 이어 살면 무엇하나. 다 사라지고 없을 텐데. 그래서 평론가는 행복의 반대말이 허무가 아닌가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유머러스하고 유연한 문체로 화제가 된 김영민 교수의 인문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도 영화 패터슨이 언급된다. “패터슨의 일상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흔히 영화라고 하면, 대개 이러한 일상 활동 끝에 발생하는 극적인 일이나 과잉된 감정을 다루기 마련이지만, ‘패터슨’은 일상의 반복 그 자체를 다룬다. 그 반복되는 일상은 어떤 절정으로도 시청자를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상은 조용히 진행되는 예식처럼 잔잔히 아름답기에, 시청자는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일상에의 몰입감, 그것이 이 영화의 정체다.”

연말연시에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글’을 청탁받을 때마다 ‘절망을 밀어낼 희망과 위로를 말할 자신이 없어’ 사양하곤 한다는 김영민 교수는 책을 통해 강조한다. 희망이 답이 아니라고. “탈진 상태인 이들에게 앞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희망은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필요한 위안이 되어야 한다”는 문장은 깃발처럼 펄럭인다. 누구나 자기 삶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 자신을 압도하는 무의미에 휩싸일 때 절벽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상상을 하라는 말도 마음에 담았다. 언덕 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힘들게 오르는 것은 그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니, 절망하지 않고 다시 언덕을 내려오리라는 약속과 같다는 인문학자의 수굿한 목소리에 하루를 걷는 다리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는 기분이다.

지상에서 천국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을 단단히 지켜내는 습관 그리고 그 일상에서 신성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시와 예술 작품의 향유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인생의 허무와 부드럽게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일상 속에 있다. 연말에 읽는 책과 강연이 다시 한번 이 점을 환기했다. 왜 사는가를 쓸쓸하게 자주 묻지 않고 하루라는 우주에 깃들인 신성을 자주 찾겠다. 매일 아침의 햇살이 얼마나 새로운지 느끼면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