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달 23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합의한 지 7일로 보름째다. 합의 직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정조사 계획서에 따르면 조사 시한은 내년 1월 7일로 아직 한 달 남았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특위는 여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특위는 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국정조사가 기한 내에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자료제출 요구 등 준비기간을 거쳐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등을 차례로 해야 하는데 시한이 촉박하다. 국정조사가 시작도 하기 전에 부실로 막을 내리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당초 여야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처리한 뒤 본격적인 국정조사 활동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합의 정신을 존중했다면 지금쯤 특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조사 계획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여야는 느닷없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를 놓고 대립하더니 국정조사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예산안 처리는 헌법이 정한 시한마저 넘겼다. 자신들이 합의해 국민들 앞에 발표한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치권이 실망스럽다.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5일 처음으로 관련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 중 2명에 대해서는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특히 참사 당일 부실한 대응으로 지탄을 받은 이임재 전 서울용산경찰서장에 대해 특수본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특수본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계획이지만 이 전 서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윗선 수사의 차질이 예상된다.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경찰 수사의 한계다.
그래서 더욱 국정조사 필요성이 부각된다. 희생자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경찰 수사를 넘어선 광범위한 조사가 요구된다. 법적 책임 추궁도 중요하지만 기술적·과학적 분석 기법과 활용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장검증 등에 엔지니어나 IT 전문가들을 투입하고 이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국정조사 대상은 광범위하다. 이미 합의된 기관만 해도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부터 행안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용산경찰서, 서울용산구청 등 16개가 넘는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국정조사에 진정성을 갖고 준비를 서두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