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풍경, 소량 구매가 는다

입력 2022-12-07 04:03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점에 있는 니치향수 매장의 모습. 롯데백화점 제공

두 아이를 키우는 최은영(42)씨는 지난달에 결혼 10주년을 맞아 남편과 명품 반지를 사기로 했다. 가격인상 소문 때문에 세 차례 오픈런을 시도했다. 세 번째에야 제대로 쇼핑할 수 있었지만 결국 반지를 사지 않기로 했다. 최씨는 “100만원 아끼려고 1000만원 가까운 돈을 쓸 생각을 했다니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주식시장 좋을 때 벌어둔 돈으로 사려고 했으나 당분간 불황이 이어진다는 얘기에 적금으로 돌렸다”고 말했다.

고물가가 소비 흐름을 바꾸고 있다. 소비심리가 위축하면서 ‘취향 존중’ ‘플렉스’에서 ‘가성비’ ‘스몰 럭셔리’로 빠르게 옮겨간다. 명품의 인기는 불경기에 아랑곳 않는다지만, 최씨처럼 지갑을 닫는 소비자도 적잖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내년에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이 이어진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가성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대세로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물가 고공행진에 명품 소비를 줄였다는 조사도 나왔다. 롯데멤버스에서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을 통해 지난달 11~25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물가 부담으로 소비를 줄인 항목의 1위는 명품(26.1%)이었다. 이어 의류·패션잡화(25.8%), 전자제품(11.6%), 화장품·향수(9.8%), 스포츠·레저용품(9.1%) 등이 지목됐다.

가장 늦게 소비를 줄인 항목으로는 절반 이상이 식품(51.8%)이라고 답했다. 생활밀착형 소비에 충실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경향성이 확인된 셈이다. 식품 소비에서 가장 먼저 줄인 품목은 과자류(15.6%), 빵류(15.3%) 등 간식이 많았다. 육류(12.9%), 주류(12.0%), 커피·음료수류(10.1%), 건강기능식품류(9.7%), 과일류(8.4%)가 뒤를 이었다. 소비를 가장 늦게 줄이는 식품은 쌀·잡곡류(21.1%), 육류 (15.6%), 커피·음료수류(10.9%), 과일류(10.3%), 채소류(8.8%) 등이었다.

또한 ‘생활밀착형 소비’가 힘을 얻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신 편의점과 동네슈퍼에서 조금씩 사거나, 외식비 부담에 가성비 좋은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내년 주식시장의 유통업종 중 편의점 주식을 가장 유망하게 내다본다.

가방, 보석 같은 고가 명품을 향수, 립스틱 등의 ‘스몰 럭셔리’가 대체한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경기 불황이 깊어지는 미국에서는 올해 하반기에 립스틱과 향수 판매가 급증했다. ‘소확행’ 트렌드가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선 명품 소비가 급감하지는 않는다고 내다본다. 명품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 가운데 가격부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때 최대 호황을 맞았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 둔화세를 보인다고 진단한다.

김근수 롯데멤버스 데이터사업부문장은 “불경기가 닥치면서 소비자들이 당장 꼭 필요한 품목 외에는 지갑을 닫고 있지만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만큼은 무작정 줄이기보다 상황, 기호에 맞게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