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버스베이 유감

입력 2022-12-07 04:04

도로는 몸살 중이다. 방향마다 목적지를 가리키는 글자들이 누워 있고 이마저 미덥지 않아 분홍, 초록으로 색을 칠했다. 우회전 안 되고 직진 안 되고 주정차 안 되는 여러 금지사항이 적혀 있는 모습이 어지럽다. 안내표시뿐 아니다. 전체의 모습 또한 구불거리고 삐뚤빼뚤하다. 이유는 여럿인데 대표적인 게 버스베이다. 좁은 도로에 버스가 정차하는 동안 다른 차량 통행이 불편하니 따로 차선을 만들어 안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교차로나 아파트 단지 같이 교통 수요가 큰 출입구의 완화차선이나 가속차선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도였겠지만 우리나라 도시에만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도시 경관에서 도로 역할에 대해 되돌아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불규칙한 폭의 도로는 인간 행태에 반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버스들이 살포시 차선을 따라 인도에 가깝게 붙여 승객을 내리고 다시 차분하게 교통 흐름으로 합류하는 것을 기대했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도로가 정체 중이거나 한적하거나 가리지 않고 버스베이로 만든 정류장에서 반쯤 걸쳐 버스가 정차하기 마련이다. 완화차선도 원래 의도로 쓰이기보다는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나 불법 정차한 차들이 서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시민의식을 탓하기 전에 이상에 치우친 불합리한 형상을 고민해봐야 한다.

둘째로, 좁아지는 인도도 문제다. 도로는 일정한 폭을 유지하는데 불규칙한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도를 그만큼 파내야 하고 거기에 버스정류장 시설까지 더해지면 실제로 통행이 가능한 인도는 1m도 안 되는 때도 있다. 원활한 차량 통행을 위해 보행 공간을 희생하는 건 도시의 태도가 아니다. 그 반대가 맞다.

셋째로, 도로는 도시 경관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차량과 보행인의 통행이라는 원초적인 기능 외에 시각적인 통일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물로 채워진 도시에서 때로는 거의 유일하게 비워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비움의 형태가 온전할 때 다양하고 복잡한 건물을 포용하고 통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는 인프라와 건축의 관계가 긴밀하고 통합될 때 기능적으로 시각적으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좋은 사례가 공원 형상대로 도로가 나고 도로 형상대로 건물을 지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다. 더 분명한 사례는 영국 런던에 있다. 흔히들 런던, 뉴욕, 프랑스 파리를 세계의 대표적 도시로 열거하지만 런던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공간의 질적인 측면에서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거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666년 런던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거의 도시 전부를 태웠다. 중세 도시에서 근세 도시로 탈바꿈할 좋은 기회였지만 여의찮았다. 이미 시민계급이 성장했고 사유재산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터였다. 건물은 중세의 모습 그대로 다시 지어졌고 목조에서 화재를 대비해 벽돌을 많이 쓰는 정도가 변화의 전부였다.

아직도 남아 있는 런던 중심부의 불규칙한 공터나 조각난 인도는 중세의 흔적이다. 애초부터 신도시였던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19세기에 이르러 대대적인 개조에 성공한 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왕실이나 귀족이 기증한 저택이나 사냥터를 공원으로 바꾸는 게 전부였다. 19세기에야 런던 도심부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재개발 프로젝트가 시행됐는데 그것이 리젠트가다. 중세의 복잡한 도로 선형을 없애고 곧게 뻗다가 완만하게 굽은 도로와 그에 맞춰 지어진 건물군이었다. 일부만 실현됐지만 리젠트가는 지금도 런던 도심의 가장 번화한 명품 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도로와 건물 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20세기 모더니즘 도시의 반성은 도시의 중요한 요소, 도로나 공원 또는 랜드마크들과 동떨어진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이 땅의 건축가들에게 삐뚤빼뚤한 도로에 맞추면서도 도회적인 건물을 설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일지 모른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