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나만의 ‘올해의 책’을 꼽곤 한다. 한 해 읽은 책 가운데 어떤 책이 좋았는지, 분야별로 추리기도 하고 국내외 저자를 구분해 살피기도 한다. 올해는 수고를 조금 덜겠다. 단연 좋았던 책이 있었으니까. 1990년생 용접공 천현우씨가 쓴 ‘쇳밥일지’다.
좋은 에세이의 기준은 뭘까. 진실하고, 일상이 녹아있고, 일관된 서사가 흐르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 쉬고, 각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일단 ‘재밌는’ 에세이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삶’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사회적 메시지가 한 스푼 담기고, 사유가 돋보이고, 문장까지 유려하면 정말 좋은 에세이라 할 것이다. 쇳밥일지는 그런 책이다. 덧붙여 책을 덮으며 ‘나도 써보고 싶다’ 느꼈다면 최고 에세이라 할 수 있겠지. 쇳밥일지는 그 조건까지 충족한다.
“학교 다닐 때 놀았으니 저런 일이나 하는 거야.”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른바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적잖이 이렇다. 심지어 “너희도 공부 안 하면 용접이나 하며 살게 된다”는 황당한 발언이 교육 현장에 난무하던 시절도 있었다. 용접을 미용으로 바꿔도 되고 운전사, 경비원, 캐셔 등으로 옮겨도 뜻은 통하리라.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회의 탈락자처럼 취급하며 반면교사로 삼으라 가르치던 폭력의 시대였고, 지금도 그 시절을 못 잊고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이 주위에 흔하다. 정치권에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력하면 된다’는 격언이 20년쯤 전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런 말 하면 바보 취급받는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안다. 계급은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밑바닥에 태어난 아이들은 밤낮 몸부림쳐봤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애써 노력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과연 “노력하지 않은 그들 탓”이라 탓할 것인가. 사다리를 누가 걷어찼는지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조차 이제는 피곤하다. 일단 사다리를 바로 세워야 하고, 새로 만들어야 하고, 여론의 사각지대에 살아가는 계층의 복리를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천현우의 에세이는 흙수저가 아니라 무(無)수저로 태어나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땀과 눈물을 쏟는 청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노동쟁의 소식이 곳곳에 들린다. 혹자는 파업의 배후를 의심한다. 무리한 요구를 자꾸 들어주다 보니 나라가 이 꼴이 됐다고 ‘한국병’ 운운하는 논객마저 있다. 그런 말이 무슨 소용 있을까. 배후를 처단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노동자들의 요구에 준엄히 법적으로 대응하면 ‘멋진’ 시장주의 법치국가가 확립될까. 결과는 반대로 흐를 것이다. 설령 배후가 있다 한들, 그들이 숙주로 삼는 약자들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기생충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것이다. 재벌을 앞세워 빠른 경제 성장만 추구하며 노동조합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방치한 것은 지난날 보수 정권의 치명적 잘못이기도 하다. ‘저들’의 패악질이 아니라 당신 발아래부터 반성하시라.
우리 사회 여러 문제는 워낙 복잡하게 얽혀 이제 단순한 해법으로는 풀 수 없는 중증 질환이 됐다. 해결의 씨앗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토양 위에 자라날 텐데 현실은 서로를 악마화하고 ‘강경 대응’을 외치는 자들만 득세한다. 정치는 상대를 굴복시켜 끝나는 전쟁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끌어안는 오롯한 상생(相生)의 영역이다. 그런 측면에서 쇳밥일지가 이해와 소통의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조가 파업했는데 주무 부처 장관이란 사람이 SNS에 ‘민폐노총’이라고 조롱이나 하고 있다. 원희룡 장관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