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동성 공급 대책을 잇달아 내놨지만 ‘돈맥경화’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한전채 등 특수채의 발행액이 급증하며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인 여파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채권이 포함된 특수채의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4조7666억원으로 발행액이 상환액을 배 이상 웃돌았다. 이는 전월(2조143억원)의 2.4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수채 발행액은 8조7380억원으로 전월(6조1524억원)보다 2조6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전체 채권 발행액 중 특수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 하반기 내내 10% 안팎을 기록했지만 지난달엔 15.4%까지 증가했다. 정부가 자금경색 해소를 위해 한전 등 공공기관에 은행 대출을 이용하거나 발행 시기를 분산하는 등 채권 발행을 자제하게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셈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입장에선 굳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 공기업은 국가가 보증하는 최우량(AAA)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어 채권을 발행하면 비교적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가 시작된 지난 9월 28일 이후 투자자들은 공기업 채권에 몰려들었다. 특수채 금리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회사채 순발행액은 지난 10·11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유동성 공급 정책, 전기 도매가격(SMP) 상한제 등 정책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며 최근 한전채 금리와 회사채 금리 간 역전 현상은 해소됐지만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금리 인상이 끝나지 않은 데다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 등을 고려할 때 물량에 대한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자금경색 해소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공기업들이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전채 등 특수채, 은행채 등에 시중 자금이 쏠리는 상황이 해소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공공기관이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정부가 손을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