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보이스피싱 조직이 조직폭력배와 결탁해 범행에 필요한 대포통장·대포폰을 공급받고, 범죄 수익금으로 마약을 하는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다 정부 합동수사단에 덜미를 잡혔다. 이 조직은 중국에 있는 총책에게 사업권을 수주하듯 현금 수거 등의 사기 물량을 따냈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 합수단은 사기·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국내외 총책 등 30명을 입건해 이 중 8명을 구속 기소,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 7월 합수단 출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을 검거한 사례다.
국내 총책 A씨(39)는 2013년 9월부터 올 6월까지 저금리 대출 등을 미끼로 피해자 23명에게 약 9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번에 검거된 환전책과 현금수거·공문서위조책, 대포통장 유통총책 등은 2013년부터 A씨와 친분을 유지한 지인들이었다.
이들은 중국 ‘오더집’(콜센터로부터 피해자 정보를 전달받아 현금수거책에게 피해금 수수를 지시하는 조직) 총책 두 명으로부터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정보를 얻어내 현금을 수거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의 1차 현금수거책에게 접근, 경찰인 척하며 피해금을 가로채기도 했다. 또 범죄 사실이 경찰에 적발됐다고 중국 총책을 속여 상납해야 할 피해금 3억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조직원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건 마약 덕분이었다. 사기로 번 돈으로 마약을 사서 공동 투약하는 방식이었다. 합수단은 A씨 주거지 압수수색 등에서 필로폰과 주사기 등을 확보했다. 기소된 20명 중 12명이 마약 투약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범죄에 활용할 대포통장과 대포폰은 조직폭력배들이 지원했다. ‘동방파’ 두목 B씨(54)는 대포통장을 제공하고 계좌명의자 1명이 매달 받는 대가(월 800만원)의 절반을 알선료로 받아 1억7000만원을 가로챘다. A씨는 칠성파 행동대원으로부터 대포폰 유심칩을 제공받아 수사기관 추적을 피해왔다.
이들은 자금 세탁과 해외 송금에도 다양한 불법·편법을 동원했다. 대포통장 5~6개를 거쳐 돈을 세탁한 뒤 해외 계좌로 송금하거나, 가상화폐거래소 ‘바이낸스’의 불법 차명계좌를 통해 피해금을 가상화폐로 환전하는 방식도 이용했다. 합수단은 휴대전화 포렌식과 계좌추적을 바탕으로 중국 총책 두 명을 특정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