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버림받은 문제아, 디자이너 꿈꾸는 대학생으로

입력 2022-12-01 04:05
6년째 자립준비청년 개인 상담사 일을 하고 있는 태그 티모시가 지난 14일 영국 노팅엄의 한 사무실에서 영국의 개인 상담사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태그 티모시(56)가 레이첼(가명·22)을 처음 만난 건 6년 전이었다. 당시 레이첼은 친부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당해 부모와 분리된 채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했다. 학교에서 친구와 심하게 다투거나 친구 돈을 뺏는 문제적 행동도 했다. 일반 학교에서 거부당한 레이첼은 결국 문제아들이 모이는 대안학교로 보내졌다. 붙잡아주는 이 하나 없이 사회에서 밀려나기만 했던 그때, 티모시는 레이첼의 개인 상담사(PA·Personal Advisor)가 됐다.

지난 14일 영국 노팅엄에서 만난 티모시는 6년째 개인 상담사 일을 하고 있었다. 영국은 아동법상 16~25세의 ‘케어리버’에게 지방정부가 PA를 배정한다. 케어리버란 지방정부에 의해 돌봄을 받은 적이 있는 청년을 뜻하는 말로, 한국의 자립청년과 비슷하다. 영국은 자립을 앞둔 모든 청년에게 PA를 배정해 자립 계획을 함께 세우고 자립 후 사례 관리도 한다.

티모시는 “처음부터 레이첼이 마음을 연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레이첼은 아무런 의지도 없었고 묻는 말에 대답만 겨우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티모시가 1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레이첼을 만나 얘기를 나눴고, 마침내 레이첼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아이였던 레이첼은 이젠 어엿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티모시는 레이첼의 변화에는 PA 제도 중 ‘패스웨이 플랜’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한다. 패스웨이 플랜을 통해 PA는 아동과 함께 자립 이후 어떤 직업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계획하고 이를 자립청년이 실행할 수 있게 돕는다.

포함되는 내용도 세부적이다. 거주지,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 취업 지원 및 교육에 대한 정보 등 자립 이후 삶의 각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이 담긴다. 자립 이후 거주지를 비롯해 사회적 관계는 잘 형성하고 있는지, 건강기록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 성공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확인한다.

티모시는 4년 동안 매주 레이첼을 만나 6개월마다 패스웨이 플랜을 업데이트했다. 업데이트를 위해서라도 PA는 아동들을 꾸준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또 작성된 계획은 지방정부에서 관리한다. PA가 제대로 작성하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티모시는 시간을 들여 PA와 아동이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에 PA에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도 하고 PA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며 “아이와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티모시는 레이첼과 만나는 빈도를 점차 줄이고 있다. 레이첼이 자립할 수 있도록 서서히 거리를 두는 것이다. 레이첼이 PA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는 걸 막고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청년들이 직장을 가지게 됐을 때 가장 자랑스럽다”며 “직장을 가지는 건 자립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티모시는 이날도 담당하고 있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웨일스에서 300㎞ 넘게 떨어진 노팅엄으로 왔다. 현재 20여명을 돌보고 있는 그는 “돌보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 여러 도시로 이사를 갔지만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며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팅엄=글·사진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