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객이 창구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인출하려 할 때 은행원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권고 지침이 최근 도입돼 운영 중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지침을 피해 가는 ‘꼼수 영업’ 방식이 번지고 있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지역에 따라 500만~1000만원 기준을 두고 이를 초과한 현금을 인출하려는 고객에 대해선 경찰 신고를 하라는 권고 지침을 시중은행에 내렸다. 금융감독원도 1000만원 이상 인출 고객에 대해선 용도를 확인하고, 은행 본점은 경찰 신고 지침을 마련토록 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현장에선 이런 예방책이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시흥 한 영업점에 근무하는 행원 A씨(31)는 “관련 지침을 고객에게 설명할 때마다 매번 ‘내 돈을 내가 찾겠다는데 왜 경찰을 부르냐’는 불만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행원들 사이에서는 지침을 피하는 ‘팁’이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찰 신고 기준선에 살짝 못 미치는 금액을 인출하도록 권유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이 기준선이라면 999만원만 인출하도록 권유하는 식이다.
일정 금액은 창구에서 인출하고 나머지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인출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창구 인출과 ATM 인출이 따로 집계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ATM에서도 인출 전 보이스피싱 방지 문구가 표시되지만 이와 관련한 인출 제한은 없다.
은행권에서는 실효성 떨어지는 대책 대신 확실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중은행 한 직원은 “고객들은 불편하다고 하는데 행원들은 권고 지침을 따르지도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고객 편의 들어주다가 결국 범죄를 못 막았다는 책임을 떠안을까 하는 부담도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