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체념하는 말·주변 정리는 위험 신호” 적극적 관심 필요

입력 2022-11-28 04:09
지난 24일 경기도 고양의 한 추모공원을 찾은 고(故) 이지한씨 유족들이 유해와 함께 안치된 이씨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생전 배우로 활동했던 이씨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김용현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사망한 가족에 대한 통상적인 애도 반응을 넘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7일 국민일보가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약 한 달의 시간을 보낸 유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들은 생업을 이어갈 수도 없고 일상 회복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였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체념한 듯한 말을 하거나 주변을 정리하고, 자기가 소중히 여겼던 걸 다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등의 행동은 위험 신호일 수 있다”며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경우 죄책감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정 이사는 “‘가족의 죽음을 왜 막지 못했을까’하는 마음이 크고, ‘내 가족이 죽었는데 나만 살겠다고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죄책감이 핵심적인 감정 중 하나”라며 “죄책감에서 평생 못 벗어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심리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용기를 내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상황에 도움이 되는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20세 딸 박가영씨를 떠나보낸 어머니 최선미(49)씨는 “너무 힘들어서 트라우마센터 쪽에 상담을 요청했는데 ‘마음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 1주일 후로 잡겠다’고 했다”며 “내가 당장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한 건데, 왜 시간이 필요하다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나중에서야 병원에서 연락이 와 아이와 남편이 상담을 받았는데, ‘잠은 잘 자는지’ 등 형식적인 질문이 계속돼 상담을 다녀온 아이가 ‘구경 당한 기분이었다. 다시는 상담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유가족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 이사는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주위의 공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슬픔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대가 중요한 힘이 된다”고 제언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