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사망한 가족에 대한 통상적인 애도 반응을 넘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7일 국민일보가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약 한 달의 시간을 보낸 유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들은 생업을 이어갈 수도 없고 일상 회복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였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체념한 듯한 말을 하거나 주변을 정리하고, 자기가 소중히 여겼던 걸 다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등의 행동은 위험 신호일 수 있다”며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경우 죄책감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정 이사는 “‘가족의 죽음을 왜 막지 못했을까’하는 마음이 크고, ‘내 가족이 죽었는데 나만 살겠다고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죄책감이 핵심적인 감정 중 하나”라며 “죄책감에서 평생 못 벗어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심리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용기를 내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상황에 도움이 되는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20세 딸 박가영씨를 떠나보낸 어머니 최선미(49)씨는 “너무 힘들어서 트라우마센터 쪽에 상담을 요청했는데 ‘마음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 1주일 후로 잡겠다’고 했다”며 “내가 당장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한 건데, 왜 시간이 필요하다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나중에서야 병원에서 연락이 와 아이와 남편이 상담을 받았는데, ‘잠은 잘 자는지’ 등 형식적인 질문이 계속돼 상담을 다녀온 아이가 ‘구경 당한 기분이었다. 다시는 상담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유가족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 이사는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주위의 공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슬픔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대가 중요한 힘이 된다”고 제언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