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빌라에서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일가족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복지 사각지대 가구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 가정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생활고를 겪었는지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나섰다.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전 11시41분쯤 인천시 서구 당하동의 한 빌라 안방에 쓰러져 있는 10대 A군 형제와 40대 부모 등 일가족 4명이 발견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 당국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을 당시 A군 형제는 숨진 상태였다. 이들 부모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부부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현재 뇌사 상태다.
당시 자택 안방 앞에는 불에 탄 가연물질과 자필로 쓴 유서 등 극단적 선택을 의심할 만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유서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시신을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사 결과 이들 부부는 모두 별다른 직업이 없고 빚이 있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위기의심가구로 지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구축해 위기의심가구를 찾아내고 있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기초생활수급 탈락·중지, 금융 연체 등 34종의 위기 정보를 빅데이터로 수집·분석해 복지 사각지대 가구를 예측해 왔다. 인천 서구 관계자는 27일 “해당 가구는 그동안 34종 위기 정보에 한 번도 해당하지 않았다”면서 “10여년 전 현재 사는 곳으로 전입한 후 복지 상담 등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뇌사 상태인 이들 부부가 실제로 생활고를 겪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직업 유무와 채무 관계, 질병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또 숨진 형제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 침입 흔적이나 외상은 없었다.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 일가족은 A군이 재학 중인 특성화고 교사가 지난 25일 현장실습이 예정된 A군이 오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자 112에 신고해 발견될 수 있었다. A군의 동생은 지난해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군은 전날 현장실습 업체에 ‘집안일이 있어서 나가기 어렵다’고 연락했으나 25일에는 별다른 말 없이 나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