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대응’ 한 발씩 늦는 산업부… 저자세 일변도에 성과 제로

입력 2022-11-25 04:04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7월 IRA 초안 공개 직후 늑장 대응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지 네 달이 흘렀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IRA 대응을 전담하는 산업부 내 통상교섭본부가 미국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대응 실패 우려를 키운다. 한국 기업들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교섭본부 대응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는 지적이다. 한국산 전기차 등이 피해를 볼 수 있는 IRA 법 초안이 공개된 것은 지난 7월 27일이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 관계자가 미국 상무부 측과 면담에 나선 것은 초안 공개 이후 2주나 지난 8월 9일이었다. 문재인정부 때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했을 때의 발빠른 대응과 대비된다.

이는 입법 동향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다. 통상교섭본부는 대미 통상외교를 위해 매년 수십억원의 국민 세금을 쓰고 있지만 IRA 입법 가능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통상교섭본부는 올해 미 의회 자문, 한·미통상 분쟁해결 및 법률자문 명목으로 15억4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미 의회 입법이나 제도 관련 자문을 위해 미국 로비 전문 로펌과 계약한 예산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통상교섭본부가 로펌 등을 통해 보고 받은 IRA 관련 동향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교섭본부는 국회 보고에서 “입법이 비공개로 진행돼 민주당 상원의원들조차 IRA의 세부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뒤늦게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8월 IRA가 발효된 이후 미국과 세 차례 화상회의를 했다. 실무자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미 재무부에 IRA의 친환경차 세액공제 조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할 수 있다는 1차 의견서도 냈다. 정부는 다음달 3일 2차 의견서도 접수할 예정이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대상이 미국이다보니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교섭본부는 IRA와 관련해 미국을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은 아예 검토하지 않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24일 “한·미 양자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국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는 IRA와 관련해 ‘유럽산 우선 구매법’ 시행 등 강력한 대응 조치를 예고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과의 협상에 성과가 없을 경우를 대비하면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미국이 막판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IRA 시행에 따른 한국 기업 피해액은 12조~18조원(더불어민주당 추산)에 달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IRA를 둘러싼 속시원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하면서 기업들의 혼란이 더 커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