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4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낮췄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출 부진으로 내년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발생 때인 2020년(-0.7%) 이후 최저 수준의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한은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 8월 전망치보다 0.4% 포인트 낮은 1.7%로 제시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 1.8%,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 1.9%, 국제통화기금(IMF) 2.0%, 아시아개발은행(ADB) 2.3% 등 국내외 주요 기관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앞으로 국내 경제는 잠재 수준(2%)을 밑도는 성장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한국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성장률에 미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에는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 부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내년 연간 수출이 전년 대비 0.7%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수출 대상국의 경기 둔화에다 반도체 경기 위축까지 겹치면서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액이 감소한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기존 37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크게 낮췄다.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 역시 280억 달러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에 대해 “90% 이상이 주요국의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수출이 떨어진 효과”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고물가 상황이 경기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 한은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1% 포인트 낮춘 3.6%로 전망했다. 올해보다 다소 낮아진 물가 상승률이지만 여전히 민간소비와 기업투자를 움츠러들게 할 요인이다. 한은은 “설비투자는 높은 대외 불확실성 등으로 신규 투자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투자는 주택경기 둔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소 등으로 부진할 전망”이라고 했다.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나타났던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 급증 현상)도 지속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부동산 가격 급락 흐름 역시 민간소비를 억누를 요소다. 코로나19 확산기를 거치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정부가 또다시 경기 회복을 위해 돈을 푸는 정책을 쓰기도 어렵다.
다만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내년 상반기 1.3%에서 하반기 2.1%로 다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내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완화되고 반도체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반영된 수치다. 이 총재는 “IMF 외환위기 때처럼 큰일이 생기는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전 세계(경제)가 굉장히 나쁜 내년 상반기에 우리 성장률은 낮아지다가 전반적으로 전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