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허 우선심사로 기업 경쟁력 제고 뒷받침할 것”

입력 2022-11-25 04:03
이인실 특허청장이 24일 정부대전청사 특허청장 집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분야 특허 우선심사, 전문인력 확보, 국제 공조 등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허청 제공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분야 우선심사, 관련 산업에 종사한 민간 퇴직자의 적극적인 채용 등으로 우리나라가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돕겠습니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허청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최근 시행된 반도체 우선심사 같은 효과적인 정책을 다른 분야까지 확대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청장은 기술패권 시대에 글로벌경쟁력을 가지려면 국내 기업이 보다 빠르게 첨단기술 특허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특허 심사는 기술 선점의 관건이다.

특허청은 지난 1일부터 반도체 분야에 대한 우선심사를 시행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분야에 대한 범부처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이 청장은 “그동안 12개월 넘게 소요됐던 반도체 분야의 특허 심사기간이 우선심사 시행으로 2.5개월 수준까지 단축될 것”이라며 “향후 디스플레이·배터리 등 다른 첨단기술 분야에도 우선심사를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새로운 기술을 낳는 시대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우수한 경력을 가진 퇴직자를 지켜 핵심기술의 유출을 방지해야만 기술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허청이 도입한 반도체 퇴직인력의 전문심사관 채용은 인재 유출 방지, 퇴직자 재취업이라는 목표를 한꺼번에 잡아낸 혁신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올해는 우선 30명을 채용하고 성과에 따라 내년에 더 많은 인원이 추가 채용될 전망이다.

이 청장은 “첨단산업 분야의 퇴직인력은 기술 이해도가 높아 심사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심사인력이 증원되면 심사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퇴직자들이 공직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관리의 큰 원군이 생긴 셈”이라며 “훌륭한 경력을 갖춘 퇴직자들이 ‘은퇴 후 해외에 나가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첨단기술은 반도체가 인공지능(AI)·바이오 등 다른 분야와 융합하는 게 대세가 될 것이라고 이 청장은 내다봤다. 때문에 그는 단순히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반도체 플러스’를 염두에 두고 미래 먹거리를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허청이 반도체 우선심사와 퇴직자 경력채용을 발빠르게 도입한 것도 이를 대비하기 위한 행보다.

이처럼 국가 간 기술경쟁은 점차 심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국제사회와의 공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이 청장은 3년 만에 개최된 ‘한·아세안 특허청장회의’를 통해 새로운 국제협력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조만간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특허청장회의’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지식재산 분야의 협력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 청장은 “한·아세안 특허청장회의에서 주최국인 우리나라 주도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와 아세안 10개국이 지식재산 기반의 혁신생태계를 구축하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며 “AI와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미래 지식재산제도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공식 협의체 구축에도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중·일 특허청장회의에서는 탄소중립에 대한 협력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탈탄소 기술은 모든 산업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매우 방대하다. 관련 기술개발 및 이를 과학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이번 청장회의에서 의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으로 중동과의 협력이 이슈로 떠올랐지만 중동에서의 ‘지식재산 한류’는 이미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이 청장은 강조했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당시 사우디지식재산청(SAIP)과 지식재산 분야 협력계약을 체결하고 특허청 심사관 15명을 파견하는 등 사우디 지식재산 기반 구축에 우리나라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청장은 “당시 나도 한국여성발명협회장으로서 SAIP 차장과 만나 여성 발명 현황을 논의하는 등 사우디와 협력한 인연이 있다”며 “사우디와의 협력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중동국가 및 개도국에 지식재산 한류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남은 기간에는 ‘변리사 공동소송대리’ 제도 도입에 힘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특허분쟁을 겪는 중소기업의 80%가 ‘특허침해소송 대리인으로 변리사를 선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합리적 비용으로 신속하게 특허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청장은 “유럽연합(EU)과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자국 기업의 신속한 특허분쟁 해결을 위해 이미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하고 있다”며 “제도가 도입되면 대형로펌 중심이던 특허소송시장에 중소로펌과 청년변호사의 수임기회가 열리고, 소송을 포기하는 중소기업 비율이 감소하면서 지식재산(IP) 법률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법률 소비자는 기존처럼 변호사에게 특허침해 소송을 의뢰하거나 변호사·변리사에게 공동으로 의뢰할 수 있게 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며 “조만간 국회 일정이 진행되면 관련 법안이 상정·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내외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이 청장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일의 품질이 올라가고 효과가 올라간다”며 “직원들이 일을 잘하는 것은 곧 출원인과 기업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2027년까지 세계 IP 3위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며 “단단한 토양을 만들어 미래의 청장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