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회사인 A사는 해외에 위치한 B사가 보유한 상표권을 사용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지급하고 있다. 상표권 사용료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B사가 상표권 가치를 높이기 위해 쓴 개발 비용까지 A사가 보전해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A사는 B사가 진행하는 광고비까지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A사가 영업을 통해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이 오롯이 해외로 흘러나간 것이다.
이상한 점은 B사가 보유하고 있는 상표권을 실제 개발한 곳이 A사였다는 사실이다. B사는 A사의 지적 재산인 상표권을 자사 명의로 등록한 뒤 국내에 세금을 내지 않고 이익을 챙겨왔다. B사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점도 두 회사 간 ‘수상한 거래’ 의혹을 더했다. 알고 보니 B사는 A사 사주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곳이었다. B사가 번 돈이 A사 사주 개인 자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세정 당국은 수상한 거래 내역을 해외법인을 이용한 A사 사주의 역외탈세로 보고 조사에 착수, 수백억원에 달하는 세액을 추징하기로 했다.
국세청이 국내 과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 역외탈세에 칼을 빼들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A사 사주를 포함해 모두 53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에 포착한 역외탈세 혐의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허위 거래나 투자 명목으로 법인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사례가 24건으로 가장 많다. 이 중에는 법인 돈을 해외 도박 비용으로 쓴 사례도 있었다. A사 사례처럼 상표권이나 가상자산 등 무형 자산 소유권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빼돌린 사례도 16건이나 됐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다국적 기업의 역외탈세 혐의도 13건이 포착됐다. 해외 모회사에서 수입하는 원재료·제품을 시장 가격보다 비정상적으로 높게 매입하는 방식 등을 악용하는 식으로 자금을 해외로 유출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환송금내역, 수출입 통관 자료, 해외투자 명세서를 철저히 검증하고 법인 사주 및 관련을 포함해 끝까지 추적해 과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