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거센 애국 소비 바람… 자존심 구긴 글로벌 전기차 강자들

입력 2022-11-23 04:04

로이터는 지난달 테슬라의 중국 창고에 재고가 1만6002대나 쌓였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이 꽉 막혀 수요를 쫓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쌓인 재고를 미국으로 역수입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는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찾아왔다. 그 콧대 높던 테슬라는 중국 시장에서 이례적으로 차량 가격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에) 불황 비슷한 게 왔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테슬라가 겪어본 적 없는 위기에 맞닥뜨렸다”고 보도했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가격을 인하하자 하랄드 빌헬름 메르세데스 벤츠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우리는 양산차가 아닌 럭셔리 세그먼트(영역)를 지향한다. (이런 전략이) 거시적 불확실성과 장애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벤츠는 한 달 뒤 말을 바꿨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벤츠는 홈페이지를 통해 가격 인하 소식을 알렸다. 전기차 EQS의 가격을 119만 위안(약 2억2414만원)에서 95만6000위안(약 1억8007만원)으로, 원화로 4400만원가량 내렸다. 테슬라도, 벤츠도 급하게 꼬리를 내린 건 중국 시장에 심상찮은 조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조짐은 뭘까.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이다. 22일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에 전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 7980만대 가운데 32.9%(2624만대)가 중국에서 판매됐다. 이런 든든한 텃밭을 배경으로 중국 정부는 언젠가는 전기차 세상이 올 거라고 판단하고 오래 전부터 자국의 전기차 기업에 혜택을 몰아줬다. 중국의 전기차 비중은 10.4%로 미국(3.3%), 한국(5.9%)을 압도한다. 전기차 보급에 전력을 다하는 유럽(8.3%)보다 높다.

이렇게 키운 기초체력에 중국 국민의 ‘애국주의 소비’가 영양분을 줬다. 중국 신에너지차(NEV) 판매량의 80%는 중국 브랜드다. 급성장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밀어내고 있다. 추이동수 중국승용차협회(PCA) 사무총장은 “(중국) 현지 자동차업체는 이제 근육을 키웠다. 친환경차 제조기술의 격차는 좁아진 상황에서 보다시피 공급망과 판매의 이점을 중국 기업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1위 타이틀을 두고 중국 BYD와 엎치락뒤치락하던 테슬라는 올해 3분기 이후 완전히 밀렸다. 지난달 판매량은 중국 창안자동차와 지리자동차에 뒤쳐졌다. 테슬라 모델Y는 3위에서 4위로, 모델S는 4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벤츠는 올해 1~7월 중국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약 8800대에 그친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EQS의 경우 월간 판매량이 100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아이오닉5와 EV6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아킬레스건’인 중국에서 성적표는 올해 더 나빠졌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어떻게든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산하 시장경제연구소는 2025년에 중국의 신에너지차 판매량이 120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스위스은행은 2030년에 중국에서 팔리는 신차 5대 중 3대가 배터리로 충전하는 차라고 내다봤다.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 4일 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을 찾았다. 그만큼 경제적 실리를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숄츠 총리는 “중국은 독일과 유럽의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BMW는 방중 이후 고성능 배터리를 생산하는 랴오닝성 선양시 리디아 공장을 확장하기로 현지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그룹 회장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