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 ‘불황의 꽃’ 부실채권 시장 열리나

입력 2022-11-22 04:03
지난 1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대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대출금리가 급등하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필두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NPL)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채권발행 기업과 채권 투자자들에게는 위기지만 이를 기회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부실화된 채권을 싼값에 매입해 차익을 남기는 NPL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잠재력은 있지만 유동성이 부족해 위기에 몰린 사업을 싼값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제1·2금융권 합산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3년 35조2000억원에서 10여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했다.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 증권사 발행 유동화증권 등을 합치면 실질 규모는 1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현재 채권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캐피털 3사(현대·KB·하나)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지난해 말 0%에서 올 1분기 말에는 1.07%로 상승했고 저축은행 연체율도 지난해 말 1.2%에서 올 상반기 말 1.8%로 상승했다.

경기 불황 속 연체율 상승은 일반적으로 채권 부실화로 이어진다. 중소형 증권사 등 금융사의 재정건전성 우려는 커지지만 이를 기회로 여기는 시각도 존재한다.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뜻하는 NPL을 매입해 차익을 남기는 NPL 시장이 그것이다. NPL시장 관계자는 “PF 부실이 터지면 알짜 부동산을 싼 값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실탄(현금)’을 쌓아놓고 부실 우려가 있는 매물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회사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0조3000억원으로, 2017년 말 21조1000억원에서 5년여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정책 효과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부동산 PF 등 위험도가 높은 사업이 줄줄이 부실화될 경우 지난 몇 년간 억눌려왔던 부실채권 시장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기존에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던 전업사에 이어 신생 기업들도 뛰어들며 NPL 시장은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기존 NPL 시장은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대신 F&I, 하나 F&I 등 소수 전업사가 사실상 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키움 F&I에 이어 지난해 우리 F&I 등 신규 기업들이 팬데믹 기간을 틈타 설립되며 각축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사마다 내부적으로 발생한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NPL 전담부서가 있다. 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NPL이 외부 시장에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의 경제 연착륙 기조에 따른 부실채권 관리정책은 변수다. NPL 투자는 일단 부실이 핵심인 만큼 전제조건인 ‘부실화’가 정책적으로 막히면 시장이 열리기 쉽지 않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