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약자를 보는 시선

입력 2022-11-21 04:06

지난 한 주, 한 사진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새로운 문자 메시지도, 충격적 사고 장면도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비공개 일정에서 심장병을 앓는 캄보디아 현지 소년을 만났다며 대통령실이 언론에 알려온 선행 사진이었다.

김 여사 사진은 매번 여러 의미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번에도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라는 다분히 비아냥 조의 비평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이슈가 커진 건 ‘빈곤 포르노’ 비평이 나오면서다. 안타깝게도 논쟁은 포르노라는 가연성 좋은 재료를 타고 엉뚱한 방향으로만 번졌다. 애초 쟁점인 김 여사 사진은 사라지고 질 낮은 말싸움만 남았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낀 이들에게 “엄연한 학술용어를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야권은 오만하고 배려 없어 꼰대 같았다. 대뜸 포르노란 단어에 꽂혀 연일 입에 담기도 싫은 관련어를 만들어내고 삽시간에 ‘포르노 정국’을 만든 여당엔 할 말도 없다. 한 여당 의원은 “김 여사를 어떤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으려는 못된 심보, 의도”라고도 했다. 이 발언이 김 여사를 한 번 더 모욕했을 수 있단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성을 찾자”는 말까지 나왔다.

말을 더 얹기 싫은 지경인데도 이야기를 꺼낸 건, 그래도 짚었으면 하는 점 때문이다. 빈곤 포르노는 1980년대부터 사용된 학술적 표현이 맞지만, 누군가 불편하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빼놓고 이야기해야 좋다.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깡마른 몸, 이미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듯 퀭한 눈빛, 날아드는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이 누운 아이, 그 곁의 무기력한 엄마’.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개도국 빈민을 돕는 모금을 호소하는 광고나 캠페인에서 숱하게 봤던 장면이다. 자극받은 동정심은 모금으로 이어졌다. 많은 구호단체가 이런 캠페인을 벌였고 성과는 컸다. 대신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아프리카 등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이 남았다. 더 고약한 건 ‘구호의 대상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인식이 박힌 것이다. 이런 생각의 문제는 구호 대상이 그 틀 내에 있길 요구하게 된다는 데 있다. 구호단체들 스스로 그런 광고가 부적절하다며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건 그래서다.

다시 그 사진을 보자. 소년은 김 여사 무릎에 앉아 힘없이 그의 한쪽 팔에 기댄 채 무표정하다. 김 여사는 다른 한 손으로 앙상하게 마른 소년의 다리를 주무르며 안타까운 눈길로 그 다리를 바라본다. 카메라도 그 시선을 따라 소년의 다리를 비춘다. 또 다른 사진에서 이 소년은 김 여사 양팔 사이에 다리와 몸을 걸치고 아기처럼 살짝 눕혀지듯 안겨 있다. 김 여사는 슬픈 듯 먼 허공을 바라보고, 소년은 손과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소년은 14살이었다. 심장병을 앓는 소년은 병원 치료에 도움이 필요한 처지이긴 했지만 누군가의 품에 안겨야만 앉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면 소년은 부모와 김 여사 사이에 혼자 잘 앉은 채로, 중간중간 자연스레 이야기도 나눈다.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엔 표정도 있다. 언뜻언뜻 10대 아이 특유의 느낌이 났다. 덜 슬프지만, 다행이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고를 순 없었을까. 대통령실이 직접 찍고 골라 제공하는 사진엔 등장인물부터 표정과 구도, 배경까지 모든 것에 메시지와 의도가 담긴다. 김 여사의 선행 사진에 비판과 질문이 나온 이유다. 더 불쌍하고, 더 어려운 처지처럼 강조된 사진은 도움을 받는 소년을 빛나게 하는가, 도움을 주는 쪽을 빛나게 하는가. 이 질문이 약자를 대하는 대통령실의 감수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