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구독자 관리하는 사회

입력 2022-11-21 04:02

유튜브 콘텐츠 제작 부서에서 일하게 되면서 구독자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새로 배웠다. 뻔한 얘기지만 구독자 수가 많으면 그만큼 영상의 조회 수가 꾸준히 잘 나오고, 그만큼 콘텐츠 영향력이 배가되고 수익에도 유리하다. 여러 유튜브 채널들이 꼭 말미에 입버릇처럼 ‘구독, 좋아요’를 당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구독자 메커니즘에서는 구독자를 늘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들어온 구독자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언젠가 개인 유튜버로 제법 성공한 지인과 대화를 나눈 적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짭짤한 수익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유튜버의 삶이 부담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고 했다. 특히 구독자 수가 어느 정도 확보된 뒤 구독자가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구독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꽤 자주 만들어줘야 한단다.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어김없이 빠진다는 얘기였다.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듯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느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하면서도 구독자 특성에 비춰 ‘이런 주제를 구독자가 좋아할까, 흥미로워할까’ 생각부터 하게 된다. 신문을 만드는 부서에서 기삿거리를 찾을 때 다소 막연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인가, 남이 안 쓴 내용인가 위주로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유익한 내용을 준비하더라도 구독자 취향에 안 맞거나 그들을 불편하게 하면 구독자 이탈을 감수해야 하니 묘한 긴장감도 있다.

여기까지가 유튜브 소비자에서 제작자가 되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런데 요새 뉴스를 보면 정치인부터 언론인, 성직자 등 공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마치 유튜버가 구독자 관리하듯 행동하는 것 같아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다.

최근 전용기 탑승 불허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MBC가 딱 그랬다. 대통령실이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고 했을 때 MBC의 과거 보도가 몇 가지 오버랩됐다. 대선 때 다른 매체 소속 기자와 김건희 여사의 7시간에 걸친 통화 내용을 보도했었고,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뉴욕 순방 당시 불거진 ‘비속어 논란’ 때도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했는데 좀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었다. 공영방송이라기보단 특정 정파 유튜브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실의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는 황당했다. MBC 보도가 문제가 있었다면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한 대응을 밟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걸 느닷없는 전용기 탑승 문제로 가져가는 건 의아했다. 전용기는 대통령 사유재산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MBC만 언론 자유 투사로 키워준 꼴이 됐다. 일각에서 이 조치가 다분히 평소 MBC에 대해 불만이 많은 보수층을 겨냥한 일종의 ‘팬 서비스’ 아니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되기 때문일 거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한층 더 지능화된 유튜버 같다. 해외 순방에서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에게 한 손짓을 보며 무례하다고 꾸짖었는데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대통령 일가의 사생팬, 파파라치 같아 보였다. 이태원 참사 이후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참 꿋꿋하게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마약 수사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다는 식으로 곁가지를 자꾸 부각했다. 참사를 계기로 정권이 확 뒤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극성 구독자’ 달래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급기야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운운하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가족 동의도 없이 공개하는 매체까지 나왔다. 증오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안면몰수하고 자기 진영 구독자들의 ‘좋아요’를 기대하고 벌인 일 아닐까 섬뜩하기도 하다. 구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열심히 무리수들을 두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구독자가 줄지 않는 것만 같아 걱정스럽다.

이종선 뉴미디어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