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3년째 ‘마스크 수능’이 치러진 17일 각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에서는 교육부 자제 요청 속에 떠들썩한 응원전 대신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험이 진행됐다.
오전 7시쯤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긴장한 표정을 한 학생들이 고사장으로 하나둘 걸어 들어왔다.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안타까움과 격려의 마음을 담아 수험생들과 포옹을 나눴다.
이 학교 정문에서 만난 재수생 조범수(19)씨는 “작년에도 마스크를 쓰고 시험을 봤고, 올해도 늘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면서 익숙해져 크게 불편하지 않다”며 “지난 수능보다 철저히 준비한 만큼 실수하지 않고 마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늦둥이 아들을 시험장에 보낸 최미정(60)씨는 “첫째가 고3일 때 낳은 막내아들”이라며 “불안해할까 봐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학교 앞을 서성이던 수험생 아버지 김성호(60)씨는 “끝나고 사람이 많아서 아들과 엇갈릴까봐 휴대전화를 갖고 가라고 했는데,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직원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휴대전화를 시작 전에 다 걷는다고 하더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험생 부모들의 기다림은 시험 종료 이후에도 이어졌다. 수능 4교시가 끝난 오후 5시쯤 서울 종로구 동성고 앞은 수험생을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 등 인파로 북적였다. 학부모 박경윤(55)씨는 수험생 아들에게 줄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다. 박씨는 “인생 첫 수능을 치르며 고생도 했지만, 동시에 시험을 잘 마친 것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꽃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날 코로나19 확진 수험생 1889명은 별도로 마련된 시험장에서, 코로나19로 입원치료 중인 3명은 병원에서 수능을 치렀다. 격리 시험장인 은평구 하나고에선 방호복을 입은 감독관이 수험생을 안내했다. 서대문구 한성과학고에 배정된 확진 수험생 대부분은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차를 탄 채 정문에서 감독관 안내를 받고 고사장 앞까지 이동했다.
경찰과 시민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고사장에 들어선 수험생들도 있다. 경남 통영 동원고에서는 휴가를 나와 시험을 치르는 군인 수험생이 입실 마감 시간을 15분 앞두고 고사장을 잘못 찾자 경찰이 7㎞ 떨어진 통영고로 데려다줬다. 부산에서는 한 시민이 택시 승객이 떨어뜨린 지갑에서 수험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택시를 따라잡아 지갑을 돌려준 후 수험생을 태워 고사장까지 데려다줬다.
전남 순천에서는 오전 7시25분쯤 한 고등학교 시험장 앞에서 길을 건너던 A군(18)이 승용차에 치이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A군은 병원에서 수능을 치렀다.
이날 수능이 끝난 후 고사장 근처 번화가는 수험생 할인으로 북적이던 과거와 달리 코로나19와 이태원 참사 여파로 한산했다. 수험생 박모(20)씨는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술을 마시려다가 일찍 들어가려 한다”며 “부모님이 (이태원 참사때문에) 많이 걱정하시면서 일찍 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양한주 신지호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