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증폭된 사회, 해결 방식은 고백·용서·회개 ‘신앙의 언어’로…

입력 2022-11-21 03:03
크레이그 반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총장은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기독교인들은 갈등과 분열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적 언어를 잃지 말고 복음의 중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는 1812년 미국장로교총회(PCUSA)가 설립한 학교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을 분리하면서 세워졌다. 한국인으로는 1908년 신대원 기숙사에 머물며 프린스턴대(정치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 박사가 1913년 신학 과목을 수학한 이래, 백낙준 한경직 박형룡 김재준 송창근 전성천 한태동 강신명 목사 등이 졸업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45명의 한국인 학생이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 신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번에 방한한 크레이그 반스 총장은 올해 말로 10년 임기를 완료한다.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시카고대에서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목회와 학교 현장을 오가며 신앙과 학문의 균형을 추구해왔다. 그는 2014년 첫 한국 방문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고, 이번 방문에선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반스 총장을 만났다.

-프린스턴신학교는 학생들이 어떤 목회자가 되기를 강조하는가.

“프린스턴의 독특한 점은 학생 90%가 캠퍼스 안에 거주하면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총장을 비롯한 교수진과 직원들도 학교 주변에 모여 산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목회자 후보생을 훈련할 수 있다. ‘라이프 투게더’(life together)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함께 공부하고 일주일에 5번의 채플을 통해 예배한다. 학생들은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며 봉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우리는 ‘신학 공부’라는 말보다는 ‘신앙과 학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총체적인 신앙을 추구한다. 프린스턴 공동체에 속한 학생들은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유색인종이 절반을 넘고 62개 교단적 배경을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델을 추구한다. 졸업생들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프린스턴신학교는 1920년대까지 칼뱅주의 개혁신학의 산실이었다.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10년간 프린스턴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가.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데모와 시위 등이 211%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 사회의 갈등이 그만큼 증폭됐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흐름은 교회와 신학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코로나19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등은 기름을 부었다. 나는 총장으로서 매주 채플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파라다이스(낙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설교했다. 학교 역시 여느 사회 공동체가 겪는 것처럼 긴장과 위기가 있지만 그 반응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겐 ‘신앙의 언어’가 있으며 이것이 갈등 해결의 방식이었다. 고백과 용서, 회개가 그 키워드였다.”

-프린스턴신학교의 변화에는 최근 조너선 월턴 박사를 총장으로 선임한 사례도 포함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아프리카계(흑인)라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이번 총장 선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프린스턴은 신학적으로 개혁주의에서 출발했다. 이는 교회나 신학교나 계속 개혁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린스턴 역시 지속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프린스턴신학교는 그 역사가 210년이 됐지만 항상 개혁과 변화 속에 있었다. 지금은 신학적으로 적합하며 고백적인 성향을 지향하면서 여러 모양의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월턴 총장 선임은) 이 같은 학교의 개혁적 흐름과 미국 사회의 변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총장 선임에는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의 차원도 있는지 궁금하다. 프린스턴신학교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뤘다.

“프린스턴은 과거사 반성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실행한 학교였다. 우리는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신앙적 성찰과 고백 차원에서 실시했다. 2년간 과거 역사를 자세히 조사했고 신앙적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학교로서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는 회개였다. 그 결과 설립자 중 한 명인 새뮤얼 밀러를 기념한 ‘밀러 채플’의 이름을 바꿨다. 밀러의 잘못은 그가 노예를 고용했다기보다는 흑인과 백인은 공존할 수 없으며 흑인은 신학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아프리카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채플은 학교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삭제했다. 10년 전에는 7500만 달러를 들여 도서관을 건립했는데 기부자 이름 대신 프린스턴 사상 첫 흑인 학생의 이름을 넣었다. 월턴 박사를 신임 총장으로 선임한 데는 이런 흐름과 관계가 있다.”

-백인 중심의 미국 신학교 총장이 점차 흑인이나 라틴계, 아시아계로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풀러 클레어몬트 오스틴 컬럼비아 루이빌신학교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총장을 선출했다. 이는 톱 리더로부터 변화를 주면서 미국의 다문화 사회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변화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40여년 전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 프린스턴은 백인 학생이 절대다수였고 학생 80%가 장로교 출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백인은 오히려 소수가 됐으며 30% 정도만 장로교 출신이다.”

-한국도 미국과 비슷하게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갈등과 분열 양상이 거세다. 한국교회를 향해 조언해줄 수 있나.

“서구 신학자가 한국교회를 향해 어떻게 조언하겠나. 오히려 한국교회가 미국 교회에 조언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다만 지난 10년간 총장으로서 내가 배운 것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중심(center)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학교 총장이라면 다양한 상황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본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매주 채플에서 설교하면서 복음에 합당한 우리의 사명과 가야 할 길을 강조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해설서인 ‘오늘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Body & Soul: Reclaiming the Heidelberg Catechism)의 저자로서 한국의 이번 10·29 참사에 대해 메시지를 준다면.

“10·29 참사 비극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어제 나는 아내와 함께 이태원 사고 현장을 가봤다. 그날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제1문이야말로 엄청난 위로가 될 것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내용이다. 문답서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픔 속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선언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한국 사회와 함께 아파할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