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어머니와 싸우고 때론 심하게 때렸다. 어린 나이에 화난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족들은 늘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그 사이에 나는 말없는 아이가 되어 이모들이 ‘이모’라고 부르면 용돈을 준다고 해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게다가 낯가림도 심해 직장도 구하지 못하다가 친구 덕에 가까스로 취직을 했다. 슈퍼나 마트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일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장님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워 그냥 나온 적도 많았다. 이런 답답한 생활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술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께 술을 안 마시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담배를 했고 술을 마시면 반드시 끝장을 보았다. 언젠가 술에 취해 골목에 세워둔 남의 차 위에 올라가 신나게 뛰며 기분을 풀다가 어머니가 많은 돈을 배상하며 백배 사과를 하여 마무리했다. 온 몸엔 영광의 상처로 여러 곳을 꿰맸고 앞니도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피부이식 수술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감도, 돈에 대한 욕심도, 삶의 목표도 없는 것이었다. 종일 축구를 하고 저녁에 강가에서 발 담그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면 인생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술로 인한 사고는 끊임없었다. 남의 차 밑에서 자고 음주하면 과속운전하고 그러다 공사구간의 철제 가림막 15개를 받고 거꾸로 굴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사고로 결국 면허가 취소되었다.
수없는 반성과 다짐에도 내 힘으론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었다. 몸이 점점 망가지면서도 결혼 후엔 처형, 처남과 매주 삼겹살에 술을 마셨고 결혼식 날도 신혼여행을 바로 떠나지 않고 밤새 술을 마셨다. 이렇게 대책 없는 삶을 살아갈 때 아내가 운영하는 미용실 옆에 학습지 사무실을 운영하는 부부가 매일 찾아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 조금 귀찮아 나도 예수님을 믿고 부활을 안다고 말하던 어느 날 딸을 원수에게 내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이 주고 간 책을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과 성경말씀이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이 참 하나님과 진리를 알고 믿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성경이 절대적 기준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으며 책 주인공과 같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성경에 답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어느 교회에 가야 할 지도 막막하여 학습지 형제를 만났다. 그날부터 그동안 들어도 들리지 않던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형제는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십자가 아래서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기록을 보여주며 이것은 변함없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믿지 못한 채 여름수련회에 참가했다.
첫날 예배 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는 이사야 53장 말씀이 선포되었다. 그 순간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보고 들었던 말씀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이 정확히 비춰졌다. 예수님은 원래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도 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살았으니 내가 지옥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이 알아지며 그 악랄한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드디어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다.
어느 순간 술과 담배가 끊어지고 술에 취하지 않고 단잠을 자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물론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틈만 나면 복음을 전했다. 술을 끊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처갓집 식구들은 더 이상 술자리에 부르지 않았고, 친구들도 하나 둘 곁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과거에 술에 취해 떨어져 다리를 다쳤는데 또 똑같이 술에 취해 그 곳에서 떨어져 결국 하반신을 거의 못 쓰게 된 것이다. 병문안을 가서 혹시 귀신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느냐고 하며 이번엔 귀신들이 한 놈씩 바꿔가며 잡으려고 쫓아 와 밤새 쫓기다가 막다른 곳에 몰려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친구는 그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길어야 2~3년 다니던 직장이 어느 새 10년이 넘었다. 내 안에 싸움은 있지만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듯이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있음을 날마다 고백하며 새 힘을 얻는다. 요즘엔 시편 23편을 많이 묵상한다. 출근을 하면서 수시로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치열한 삶에서 하나님께서 위로와 회복을 주신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의욕도, 목표도 없이 살았지만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기쁘게 하루를 맞는다.
이원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