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남긴 이 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감는 날까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한 문장으로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하나의 점과 같은 셀 수 없는 선택이 모여 자기 인생의 선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점의 크기는 상황과 성향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체감된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연봉이 높은 기업과 워라밸이 좋은 기업 중 어느 곳을 택해야 하나’ ‘의료 시설이 완비된 요양원과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고향집 중 어느 곳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까’ 등의 고민이 서로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갖가지 선택 앞에 봉착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곤 한다. 그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해 둔 길’에 대한 탐구 과정으로 성경 속 인물들을 들여다본다. 성경엔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에 충실하게 순종했음에도 영적 무너짐을 겪는 인물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고민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최고의 참고서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현직 목회자인 조영민 목사와 영국 성공회 사제이며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 목사는 각각 구약성경 속 인물 13인과 7인의 이야기를 꺼내 이 시대 고민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투영한다. 두 저자는 마치 두 권의 서로 다른 책을 공동 집필한 듯 첫 장을 여는 인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한다.
두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라이트 목사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조명한다면, 조 목사는 ‘조카 롯과의 갈등을 빚는 삼촌’을 보여준다. 반면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과정은 빼닮았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되는 각 장을 장면별로 설명하며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문체는 마치 영화감독이 관객을 앞에 두고 명장면들을 ‘잠시 멈춤’하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는 듯하다.
아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 있나요’(창 22:7)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말 그대로 순수한 질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알 수 없는 공포가 다가온다는 낌새를 챈 것일까요’라고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갑자기 불어난 부(富)를 대하는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으로 개명)의 태도와 이로 인해 자식 같은 조카 롯과 깨져 버린 관계, 이후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두 사람이 도달하는 삶의 종착역을 소개할 땐 중요한 선택 앞에서 드러나는 한 인간의 ‘기준과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두 저자는 8~9년 전 출간한 저서에서도 나란히 ‘선택’을 키워드로 다뤘다. ‘선택, 하나님 편에 서다’(2014)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The God I don’t understand, 2013)를 선험한 독자라면 두 권의 책이 펼쳐 보이는 흐름을 파도타기하듯 따라갈 수 있다.
우울과 분노 사이에서 용서를 선택한 ‘요셉’(창 45:1~8), 실패와 죄책감을 치유로 이끌어 낸 ‘베드로’(마 26:69~75), 목숨이 걸린 위험 앞에서도 말씀의 등불을 높이 들어 올린 ‘드보라’(삿 4:1~10)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서사엔 몰입감이 넘친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독자의 공감지수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힘은 무엇일까.
핵심은 ‘성경 속 그들처럼 행하라’ 대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집중 조명한다는 점이다. 제삼자의 시선에 머물던 상황이 1인칭 시점으로 자기 삶에 들어왔을 때 공감은 극대화된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고민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공감은 크리스천으로서의 혜안을 마주하게 할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