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지도부를 비롯한 당내에서는 “경찰 수사가 우선”이라며 국정조사에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야권의 강행을 저지할 카드도 마땅치 않고 집권 여당이 참사 관련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으로서는 고민이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선 “국정조사를 막을 수 없다면 링 안에서 싸워야 한다”는 현실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에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4~15일 초선·재선·중진의원들과의 릴레이 간담회에서도 야권의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당초 시간을 갖고 국정조사 참여 여부를 결정하자는 기류도 당내에 있었다”면서도 “이제는 ‘할 거면 민주당 혼자 해라. 우리는 참여 안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도 조만간 나오는 데다, 국정조사를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민주당의 의도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쏠린 국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정조사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외견상 수용 불가론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야당만 참여하는 국정조사는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 초선 의원은 “국정조사 대상과 기간 등을 민주당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을 집권 여당으로서 마냥 손놓고 볼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정조사가 ‘야당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 걱정된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국정조사를 피할 수 없다면 수용 카드를 내년도 예산안이나 정부조직법 등 주요 현안에서 대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4선의 윤상현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조사 수용 압박과 관련해 “예산안 통과, 민생 법안의 처리 문제 이런 것들과 다 연계해서 패키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시점과 여론의 흐름이 국정조사 대치 정국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시한으로 제시한 이달 24일 전에 수사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로 참사의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가려진다면 야당이 국정조사를 밀어붙일 명분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