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화성 살인’ 누명 쓴 20년 옥살이 18억 배상

입력 2022-11-17 04:07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에 대해 1심 법원이 16일 “국가는 18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했다. 사진은 2020년 12월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웃어 보이는 윤씨 모습. 연합뉴스

“어머니가 보고싶네요.” 이춘재의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5)씨는 16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돌아가신 모친을 떠올렸다. 그는 “워낙 오랜 세월 격리돼있다가 세상에 나오니 그 바뀐 모습에 적응하기 힘들었다”며 “(세상으로 다시 나온지) 십여년이 흘렀어도 세상을 산다는 건 힘들고 그래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에서 당시 13세 중학생이던 A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화성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이듬해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찰의 강압수사와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2심과 대법원도 그의 주장을 배척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출소한 윤씨는 진범 이춘재가 2019년 8차를 포함한 화성 사건 10건 등의 범행을 자백하자 비로소 그해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2020년 12월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된 윤씨의 자백진술은 그를 불법체포·감금한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법부 일원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윤씨의 국가배상 소송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재판장 김경수)도 이날 “국가는 윤씨에게 18억6911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20년 구금기간 벌지 못한 소득을 1억3000여만원으로 계산하고 거기에 위자료 40억원을 더해 총 국가배상금을 정했다. 이중 윤씨가 재심 무죄를 확정받으면서 받은 형사보상금 25억1000여만원을 공제해 최종 금액을 정했다.

재판부는 “경찰 수사의 위법뿐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과정과 그 결과의 위법도 인정된다”며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윤씨가 겪은 고통, 유사사건의 재발 억제·예방 필요성 등을 고려해 금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