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놓고 여야가 2주 넘게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열쇠가 될지, 아니면 정부·여당을 상대로 한 윽박지르기에 그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반드시 의결해 이달 중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18일 우상호 의원을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으로 내정하고, 민주당 위원 명단을 발표하며 여당의 참여를 압박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정조사가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정부를 향한 정치공세의 장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 등에서 이미 참사 원인이 상당 부분 밝혀진 만큼 국회는 예산안 심사 등 산적해 있는 입법 현안부터 챙기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오는 21일까지 특위 명단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여당을 배제한 채 정의당 등과 야권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국감국조법)은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국회가 특별위원회 혹은 상임위원회로 하여금 국정의 특정 사안에 관해 국정조사를 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사 대상이 ‘국정의 특정 사안’으로 규정돼 있어 사실상 대상에 제한이 없는 셈이다.
민주당 등이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는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정조사 요구서 보고 이후 각 교섭단체 대표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조사 계획서를 만들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국정조사 계획서가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국정조사권이 발동된다. 이어 증인에 대한 출석 요구 송달 기간(7일)을 포함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돌입한다.
국정조사는 관계기관의 보고, 증인신문, 검증 등의 절차로 이뤄진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국회로 불러 폭넓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또 방대한 자료를 요구해 형사 처벌의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강제 수사권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 단점이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특검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조사는 제헌국회 이래 국정감사와 구분 없이 운영되다 1953년 국정감사법이 제정되면서 특별감사 형태로 분리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국정감사법이 폐지됐지만 80년과 87년에 국정조사권과 국정감사권이 각각 회복됐다. 현재의 국감국조법은 88년 입안됐다.
국정조사는 13대 국회부터 최근까지 모두 24건이 실시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와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가 대표적이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실시된다면 6년 만이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는 2016년 11월 특검법과 동시에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국정조사 기간은 2016년 11월 17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총 60일이었고, 7차례의 청문회와 1차례의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청문회에선 재계 인사들이 미르·K재단 기금 출연에 청와대의 강제성이 있었음을 일부 시인했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또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고 부속실에서 직접 청와대를 출입시킨 ‘보안 손님’의 존재도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최서원 등 핵심 증인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국정조사의 한계도 부각됐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는 2014년 5월 국정조사 계획서가 본회의에서 의결돼 특위가 꾸려졌지만, 여야가 일정 합의에 난항을 겪으면서 활동기간 90일 중 4분의 1을 실적 없이 흘려보냈다. 특위는 청와대 비서실과 해양경찰청 등 22개 기관을 조사해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증인 채택 문제로 여야 대치가 계속되면서 청문회를 한 번도 열지 못하고 종료됐다.
야당 없이 여당이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진행한 적도 있다. 1999년 1월 새정치국민회의는 범여권인 자민련과 함께 ‘IMF 금융위기 국정조사’를 실시했다. 정권을 내준 한나라당이 극렬히 반대했지만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한 이들을 청문회장에 세우고자 했던 국민 여론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김승연 구승은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