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당당했던 사람들

입력 2022-11-18 03:06

요즘 주변에서 당당한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 이유는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도 막상 본인이 바꿔야 할 것은 바꾸지 않고 자신이 내뱉은 말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전 우리나라는 선비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도덕성은 사라지고 권력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현실을 보면서 힘없는 백성은 기운이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앙공동체 안에도 이상한 풍토가 있었습니다. ‘육체를 자랑하는’ 분위기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경력을 따지는 분위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당당하게 그들을 반박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십자가의 구원 진리를 강조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귀하고 영광스럽기에 ‘육체의 자랑’에 해당하는 학벌, 문벌, 족보, 경력 이런 것들은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히려 “해로 여긴다.”(빌 3:7~8)라고 반박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갖춘 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기 삶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기독교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민낯이 드러난 이유는 당당함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본심과는 다르게 신앙이 종교생활로 흘러가기 때문에 당당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가 돼야 합니다. 같은 기독교인임에도 오히려 질타하고 다른 소리를 내기에 전도는 더 막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에 대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상식이 바탕이 돼 있지만 믿는 것은 확신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예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을 땐 예수를 핍박하는 자였지만 예수를 만나 바로 알게 되었을 땐 믿음의 사람이 됐고 복음을 위해 더 당당해졌습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 26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이 로마 총독 아그립바왕 앞에 섰을 때 유대인들이 고발한 내용에 대해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일본을 향해 당당히 맞서 싸운 모습처럼 말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는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때 일본 판사의 깨우침에 대항하며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형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 나라를 구하는데 타협이라는 게 없었던 것은 그에게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죄수의 처지에서 그 시대 최고의 벼슬아치를 향해 “당신도 나처럼 살라”고 자신 있게 외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울처럼 당당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위기요,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해 온 위기입니다. 우리 모두 다윗을 본받아서 더 당당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동욱 목사(남양주 예정교회)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예정교회는 ‘삶의 기쁨과 희망 주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좋으며 찬양이 은혜롭습니다. 특히 기도가 뜨겁고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담임 설동욱 목사는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 대표회장과 남양주시기독교총연합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