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 골목서 못 벗어난 생존자… “붐비는 지하철역에 식은땀”

입력 2022-11-16 04:06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통제선이 걷히면서 취재진과 일반인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A씨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다. 친구들과 핼러윈 분위기를 만끽하려던 그는 순식간에 인파에 휩쓸려 40분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 있다 겨우 탈출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그의 온몸은 곳곳이 멍투성이였다. 하지만 눈에 띄는 상처보다 눈에 띄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그를 더욱 괴롭히고 있다. 눈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던 그에게 3개월 넘게 잠잠했던 공황 증상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아질 줄 알았던 증상은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그에게 나타났다.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가빠졌다. 그를 지켜본 정신과 전문의는 “치료를 잘 받아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회복 중인 환자였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로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 넘게 지났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고통으로 온전히 일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잇는 삼거리 부근에서 1시간30분가량 군중에 깔렸던 이모(27)씨에게도 지하철은 공포의 대상이다. 핼러윈 의상으로 착용했던 보호대 덕분인지 양 무릎과 골반 인대·근육이 파열되는 선에 그쳤지만 이후 붐비는 환승역을 지날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했다. 사이렌도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다. 이씨는 “길에 지나가는 구급차 소리와 불빛만 봐도 답답해지고 당시의 공포가 살아난다”고 토로했다.

30대 생존자 신모씨는 호흡곤란이 일상이 됐다. 숨을 크게 쉬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말했다. 참사를 계기로 지병인 허리 디스크가 악화된 신씨는 허리 통증이 올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신씨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옆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털어놨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참사 후유증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동네마음연구소 ‘히어포유’에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이어진다. 고진선 소장은 15일 “실제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참사를 영상으로 접한 뒤 출퇴근길 지하철을 일부러 돌아가더라도 여유로운 호선으로 간다는 경우도 있었다”며 “생존자나 목격자가 아닌 경우에는 더 드러내놓고 도움을 요청하기 꺼려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응이 지속되면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호흡곤란이나 환청, 악몽 등이) 일주일, 한 달을 넘어가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며 “특히 아무리 초기라고 하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등의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상담가나 의사, 또는 가까운 지인과 꼭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신지호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