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박원순 언동은 성희롱”… 유족, 인권위 상대 소송 패소

입력 2022-11-16 04:06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가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박 전 시장이 성희롱을 했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번 소송은 인권위가 망인의 범죄 유무까지 판단할 권한이 있는지를 두고 다퉜지만, 박 전 시장 명예회복 여부로도 관심을 끌었다. 재판부는 성희롱 여부에 대한 실체적 판단까지 내리고 박 전 시장 행위를 성희롱이라고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15일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가 제기한 인권위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강씨 등은 고인의 사망으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권위가 성희롱이 있었음을 전제로 서울시장 등에게 피해자 보호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하자 지난해 4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신빙성 높은 사실로 인정했다. 이에 기초한 인권위 결정도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처럼 성희롱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반론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망인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보낸 부적절한 문자 메시지와 본인의 사진 등은 피해자에게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 진술 외에도 참고인들의 진술이 시간, 장소, 상황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어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구체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허위 진술할 동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족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과 사진을 찍거나 ‘인품이 훌륭해 배울 점이 많다’고 하는 등 친밀감을 표했고 수년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은 피해자의 신분상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피해자로서는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직무상 불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를 감내하며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피해를 보면 즉시 어두워지고 무기력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피해자다움’ 주장도 지적했다.

이번 소송 과정에선 ‘2차 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강씨 대리인이었던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달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보낸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메시지를 보낸 건 사실이나 남녀 사이 감정이 아닌 피해자의 일터에서 동료들과 상·하 직원 사이에 존경의 의미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을 회피하고 그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도 많다”고 했다.

강씨 대리인 이종일 변호사는 “예상치 못한 결과라 매우 당황스럽다”며 “유족과 상의해 재판부 판단의 어떤 점이 부당한지 밝혀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