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이태원 참사 뒤 과열… 차분한 접근을”

입력 2022-11-16 04:08
정신과 전문의 조만철 박사가 15일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정신과 전문의 조만철(78) 박사는 미국 교민 사회에 널리 알려진 트라우마 치료 관련 권위자다. 미국에서 수십년간 거주하며 참사에 따른 트라우마 상담을 해왔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건 당시 한국어 상담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정신과 전문의로서 교민 약 2000명의 상담을 맡았고,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도 치료했다. 사회적 참사에 따른 트라우마 임상을 30년 넘게 지켜봐온 셈이다.

15일 국민일보와 만난 조 박사는 이태원 참사를 경험한 외국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영어 심리상담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가족을 보러 한국에 와있던 중 참사 소식을 접하고선 도움이 되고 싶어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일주일 미뤘다. 귀국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학생들을 상담한 그는 “한국 사회가 참사 뒤 전체적으로 과열되어 있다”며 “피해자 치료에 악영향을 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를 지켜보면서 조 박사는 LA 폭동 당시 상담했던 교민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당시 현지 경찰로부터 외면당하고 성난 군중에게 폭행과 강도를 당했던 교민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는 “당시 충격으로 몸에 병이 생긴 이가 많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져 가정불화, 사업실패로까지 이어지거나 살던 곳을 떠난 경우도 많이 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조 박사는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에 있었거나 피해자와 직접 연관된 외국인들의 트라우마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는 “친숙한 장소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참사를 겪을 때 사람이 더욱 불안해진다. 내국인은 가족도 근처에 있고, 경찰과도 말이 잘 통하겠지만 외국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고립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상담한 외국인 중에도 우울과 불안, 불면 증세를 호소한 이가 많았다고 한다.

조 박사는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에 나서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피해자 가족이나 친구 등이 그 과정에 연관되는 건 경계했다. 그는 “지금은 엄연히 트라우마 증상 초기단계”라며 “외상으로 치면 아직 피가 나고 뼈가 붙지도 않았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잘못하면 치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미국 사회라고 해서 모든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총기사고 등이 일어나도 희생자 명단은 쉽게 공개되지 않고 가해자도 18세 미만이면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유족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또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분한 대응을 강조했다. 시민단체나 법조계 등이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과 차분히 교감하며 사태 수습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 박사는 “어느 곳보다 정치권이 사태에 더 차분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언론도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데 더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