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또 고양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전남 신안군 작은 섬 홍도로 관광을 온 이태윤(10)군은 고양이 찾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날 낮 동안에만 10마리 넘게 봤다는 태윤군은 “너무 귀엽다”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진혜연(39)씨는 “여기 고양이들은 사람들한테 되게 잘 오는 게 이 섬이 자기 영역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도 고양이들은 섬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이 가까이 다다가면 스윽 하고 사라지는 고양이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이미 익숙한 듯 선착장에서부터 마을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사람들 주변을 맴돌았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고, 주택 마당이든 식당 안이든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지난달 2~3일 홍도를 방문한 취재팀은 섬을 돌아다닌 10여 시간 동안에만 족히 서른 마리와 마주쳤다. 횟집 앞에서 던져주는 횟감을 기다리는 고양이부터 마을 뒤편 우거진 수풀에 웅크린 고양이, 기암괴석이 병풍을 친 해안가에서 물고기를 찾아 헤매는 고양이까지. 이렇게 목격한 고양이 수가 1박2일간 만난 주민 수와 비슷했다. 섬 주민들은 고양이 수가 이미 주민 수(약 350명)를 넘어섰다고 본다. 이들에게 고양이는 점점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었다.
‘삶의 터전’ 훼손하는 섬냥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선 망원렌즈를 세워놓고 이틀째 조류를 관찰 중이던 20년차 탐조객 김일호(69)씨를 만났다. 희귀종 파랑딱새를 포착하려고 올해만 두 번째 홍도를 찾았다는 그는 고양이 얘기를 꺼내자 혀를 끌끌 찼다. “요새는 새가 앉을 만한 자리마다 주변에 고양이가 있어. 고양이가 아주 웬수 같어. 요새는 (탐조도) 재미가 없어.”
늘어난 고양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누구보다도 이 섬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었다. 홍도에 사는 주민 중 절반 이상이 요식업이나 숙박업을 하는데 고양이들이 업소 안팎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성수기 홍도에는 하루 2000명 넘는 관광객이 입항한다. 취재팀이 전남 목포항에서 탑승한 정원 375명짜리 여객선도 만선인 채로 입도했다. 우리가 쏟아져내린 홍도 선착장에서부터 고양이는 쉽게 눈에 띄었다.
한 식당 출입문에는 고양이 사진과 함께 ‘문 닫아주세요’라고 적힌 안내문까지 내걸려 있었다. 이 식당 주인 김준영(50)씨는 식탁 위까지 올라와 음식물을 물어가는 고양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숙박업소를 함께 운영하는 김씨는 “고양이들이 객실에 들어와 이불 위에 영역 표시까지 하는 통에 지장이 많다”고도 하소연했다.
다른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채모씨는 바깥에 생선을 널어놓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고양이가 항시 다 먹어불어서 팔 수가 없어. 쫓아가면 도망가니까 아주 죽겄소. 우리 홍도 사람 수보다 고양이가 많아요.”
고양이가 먼바다 위 한복판에 떠 있는 이 섬까지 언제 어떻게 처음 발을 들였는지 주민들도 모른다. 홍도는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도 120㎞ 넘게 떨어져 있다. 이 거리를 고양이가 혼자 헤엄쳐왔을 리는 없다.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홍도엔 고양이가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관광객 등이 데리고 들어와 버려두고 가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소위 ‘집사’가 늘어난 최근 5~6년 사이에는 홍도 고양이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고양이 밥 때문에 주민끼리 싸움도
최성진(51) 홍도 이장은 밥을 챙겨주는 주민들이 있어 고양이 수가 더욱 줄지 않는다고 했다. 관광객이 뜸해지는 겨울엔 홍도 주민도 3분의 2가 섬을 비운다. 이때는 철새도 뜸해 고양이 먹이가 줄어드니 자연적으로 개체수가 조절돼야 한다. 하지만 섬에 남은 이들이 먹이를 주니 인위적으로 고양이 수가 유지된다는 게 최 이장의 설명이다.
마을은 이 문제로 CCTV를 돌려보기도 했다. 약 10가구 주민이 새벽 4시부터 동네 구석구석 사료를 놔주는 게 확인돼 주민회의를 열어 자제를 당부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홍도는 철새들이 거쳐가는 ‘허브’잖아요. 새들도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고 그래요. 동물이란 건 그렇게 죽고 살고 해야 하는 건데 고양이한테는 천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먹이까지 챙겨주니 ‘죽을 놈’까지 살아 번식하면서 야생의 질서가 왜곡된다는 얘기였다.
일부 주민에게 고양이는 집 안에서 기르지 않을 뿐 반려묘나 다름없어 보였다. 한 모텔 주인은 4~5년 전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를 위해 옥상 한쪽에 집을 마련해주고 밥도 주고 있었다. 고양이는 ‘쿠키’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렸다. “누가 키우다 버리고 갔나 봐요. 되게 순하고 착해요.” 그는 애정을 보였다.
선착장 인근에서 커피 트럭을 운영하는 60대 안종숙씨는 2년 전부터 매달 육지에서 20㎏짜리 사료를 4포대씩 들여와 고양이들을 먹인다. 12만원어치로 적은 돈이 아니다. 일부 고양이에겐 집을 내줬는데 최근 새끼를 5마리나 낳았다고 했다. “배짝 마른 고양이들이 불쌍항게….” 안씨는 고양이가 배부르면 새 사냥을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때 커피를 사러 왔다 듣고 있던 주민 김홍도(61)씨가 반박했다. “고양이가 (배부른 거랑 상관없이) 새를 갖고 놀아. 어떨 때는 집에도 갖고 와.”
누군가가 홍도에 들여와 야생에 방치한 고양이는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 홍도 생태는 물론 주민 간 관계까지 흔들어놓고 있다. 정명진(50) 홍도치안센터장은 “고양이 음식 문제로 주민 간 다툼도 생기고 가끔 욕설까지 주고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체수 조절 시급한데
고양이를 사랑하든 않든 주민들은 중성화 사업(TNR·포획-중성화-방사)이 꾸준히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TNR은 지지부진하다. 생태 가치가 높은 지역이고 섬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지만 누구도 고양이 문제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홍도 흑산도 등을 포함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 해당 구역 생태를 관리하는 건 국립공원공단이다. 공단은 환경부의 ‘들고양이 포획 및 관리 지침’에 따라 지방·유역환경청 주관으로 연 1회 포획협의회를 구성해 포획 개체수와 방법을 결정한다. 포획된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 후 풀어준다. 관리지침상 안락사나 연구 목적 활용 같은 선택지도 있지만 2017년 동물보호단체들을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형성돼 이후 개체수 조절 수단으로 TNR만 쓰고 있다.
공단의 홍도 고양이 TNR 실적은 2018년 10마리, 2019년 30마리, 2020년 23마리로 3년간 63마리에 불과하다. 지난해엔 코로나19를 이유로 하지 않았다. 올해도 연말이 되도록 손을 대지 않았다. 1700여개 섬을 아우르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전체로 보더라도 지난 5년간 TNR 실적이 79마리에 그친다. 홍도를 빼면 흑산도(3마리) 금오도(13마리)에서만 이뤄졌다.
공단 관리 구역과 별개로 사람이 사는 마을 구역의 TNR은 신안군 소관이다. 군은 아예 홍도에서 TNR을 진행한 적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인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TNR은 별도 요청이나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신안군 TNR 실적은 2020년 16마리, 지난해 5마리, 올해 45마리다. 올해는 신안 1004개 섬 중 도로가 연결돼 있거나 규모가 큰 6개 섬에서만 TNR이 진행됐다.
돈 문제?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든다. 신안군의 고양이 마리당 TNR 비용은 20만원이다. 포획·방사를 담당하는 고양이 관련 단체에 8만원, 수술을 하는 수의사에게 12만원을 지급한다. 신안군 TNR 예산은 올해 900만원으로 늘었지만 2020년과 지난해엔 각각 240만원, 75만원에 불과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고양이 관련 예산은 2018년 825만7900원, 2019년 411만1000원, 2020년 545만8000원이었다. 이마저도 TNR 외 고양이 관련 사업비를 모두 포괄한 규모라 포획·방사를 담당한 이들은 따로 임금을 지급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목포에서 만난 황미숙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대표는 “국립공원에서 안락사가 아닌 TNR을 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포획·방사를 무료로 해왔다”며 “지자체의 경우 군의원들이 ‘길에서 잘 사는 애들 뭐하러 성적 불구로 만드냐’는 식의 발언을 하는 등 TNR에 대한 인식 자체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단 관계자는 “도서지역에선 애초 중성화 안 된 개체만 선별적으로 포획하기도 어렵고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 섭외, 여객선 이용, 임시 수술장 설치, 중성화 비용 등 공간적·시간적·비용적 제약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포획한 개체에 대한 이주 방사 등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안군 관계자는 “지난해 민원이 늘어나 올해 예산은 늘린 상태”라며 “홍도에선 TNR 신청이 들어온 적이 없어 진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리 공백 속에 다도해 섬들에는 계속해서 고양이가 퍼져나가고 있다. 약 12가구가 사는 우이도는 3년 전쯤 고양이가 등장해 최근 50마리 이상으로 늘었다고 황 대표는 설명했다. 흑산도에서는 늘어나는 고양이를 혐오해 농약이나 쥐약으로 죽이는 주민들에 대한 신고도 종종 들어온다고 한다. 황 대표는 “관리가 제대로 안 돼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학대받고, 새들은 새들대로 희생되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사실 중성화를 한 고양이가 사냥을 멈추는 게 아니기 때문에 TNR도 한계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멸종위기종이 보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입양 등의 방법으로 해당 지역에서 고양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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