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로니에공원의 진화

입력 2022-11-16 04:04

노란 마로니에 나뭇잎과 샛노란 은행잎이 가득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다녀왔다. 공원에서 열린 ‘마르쉐@혜화’ 덕분이다. 처는 건강한 채소를 탐하고, 나는 한갓진 자리를 탐했다. 마르쉐@은 ‘장터, 시장’이란 프랑스어 마르쉐(marche)에 전치사 at(@)을 더한, 멋지고 건강한 농부시장이다. 2012년 가을 공원에 면한 예술가의 집에서 처음 열린 마르쉐@혜화는 매월 둘째 일요일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마로니에공원이 자리한 동숭동은 내사산 중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자락으로 1907년 실업교육을 위한 공업전습소가 설립되며 근대를 열었다. 1916년 경성고등공업학교로 확장되고, 1925년 경성제국대학에 편입됐으며, 해방 후 서울대학교로 이어졌다. 서울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대학본부(현 예술가의 집) 앞 녹지대는 고스란히 공원이 됐다. 1929년 심은 마로니에도 백수를 넘기며 공원 한 켠을 굳건히 지킨다.

대학로는 80년대 민주화의 생생한 현장이었고, 신촌과 쌍벽을 이루던 젊음의 거리였다. 85년부터 4년간 주말마다 운영된 ‘차 없는 거리’로 엄청난 인파가 몰리며, 공연과 문화는 물론 일탈과 폭주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공원은 그 한가운데서 몸살을 앓고 생기를 잃었다. 공원의 진화는 2013년 9월 완료된 리노베이션에서 시작됐다. 대학로 문화공간을 다수 설계한 김수근 건축가의 제자인 이종호 건축가는 공원을 아르코미술관 등 주변과 경계 없이 확장하고, 마로니에와 은행나무 위주로 식재를 정돈하며, 투명한 건축물과 최소 시설로 공원을 비워냈다.

공원의 이후 10년은 마르쉐@의 10년과 겹치며 빛났다. 마르쉐@은 지구적이고 또 지역적인 문화활동의 최정점으로써 공원을 리브랜딩했다. 공원은 쉬고 산책하고 놀고 운동하는 걸 넘어 자연과 문화가 맞닿는 일상을 통해 완성된다. 공원의 진화는 이용의 진화를 낳으며 도시를 완성한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