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조선산업 중심서 더 잘사는 관광·교육 도시로 ‘업그레이드’

입력 2022-11-15 20:41
울산 동구 방어진항 끝에 있는 슬도. 섬 전체가 구멍이 뚫린 바위로 이뤄진 이 섬은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구슬프다 해서 이름이 '슬도'로 정해졌다. 동구 제공

울산 동구는 1972년 현대중공업이 동구 미포만에 둥지를 틀면서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중심도시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현대중공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수십년간 젊은 도시이자 잘 사는 도시로 불렸고 주민들의 자부심 또한 남달랐다.

그러나 2014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조선업 불황이 본격화되고, 현대중공업의 물적 분할과 본사 및 사업부 이전으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2016~2018년 사이에 3만4000여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해고되고 젊은 노동인구가 빠져나가면서 19만여명이던 인구가 15만명대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최근 해외시장에서 우수한 수주 성과를 올리면서 조선업 회생 및 동구지역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울산 동구는 이런 세계경제 변화의 흐름에 힘입어 지금이 조선업 불황 탈출의 적기라고 보고 일하기 좋은 도시, 노동자가 존중받는 도시, 주민 모두 더 잘사는 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선업 불황을 완전히 극복하고 노동자 여성 장애인 노인 등 계층에 상관없이 지역주민 누구나 잘 사는 동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구정 목표를 ‘더 잘사는 동구’로 정했다.

구정 목표를 구체화할 5대 구정방침으로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존중도시, 교육과 청년에 투자하는 미래도시, 주민의 힘으로 성장하는 자치도시, 모두가 행복한 복지환경 공존도시, 또다시 오고픈 문화관광 풍요도시로 설정했다.

궁극적으로는 우수 인력과 청년이 동구를 찾아오도록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이들이 동구에 정착할 수 있도록 복지·문화 및 교육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동구노동복지기금’ 조성이다. 동구청이 4년간 100억원을 마련하고, 정부 울산시 기업체 대기업 노조로부터 출연받아 총 300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기금은 경기침체 등에 따른 대규모 실직 발생시 노동자의 긴급생활안정자금, 주거·의료비 및 복지증진 등에 사용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복지 지원이 열악한 중소기업, 단기근로자 등에게 지원해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간 상대적 복지 격차도 메우게 된다.

노동자의 건강관리와 상담 등 종합적인 원스톱 지원을 하는 ‘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이주노동자지원센터도 건립한다.

동구청은 조선업 의존을 줄이고 지역산업을 다각화함으로써 지역 경제의 체력을 튼튼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한 기업 및 주거시설 유치, 미포산업단지 입주업종 다각화, 체류형 관광산업 육성 등을 계획하고 있다.

동구는 전체 면적(36.07㎢) 대비 개발제한구역 면적(12.86㎢)이 35%를 차지하고 있어 가용면적이 극히 부족해 도시 성장에 큰 제약 요소가 되고 있다. 동구청은 6월부터 11월까지 개발제한구역 가운데 신규 사업 유치가 가능한 지역을 파악하는 용역을 시행 중이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울산시에 개발제한 구역 조정(해제) 필요성을 강력히 알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재의 도시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미포산업단지 내 입주기업을 젊은 층이 선호하는 IT 및 4차산업으로 확장하며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조선업에 치중한 지역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울산 대왕암공원 오토캠핑장 모습. 오토캠핑장은 캐러반 17개와 오토캠핑장 36면 등 총 53면을 갖췄다. 동구 제공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와 체류형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고늘지구에서 방어진항에 이르는 관광해양특구 조성 및 관광지 지정에도 나섰다. 일산해수욕장·대왕암공원·슬도·방어진항·고늘지구 등을 한 권역으로 묶어 관광해양특구로 지정하려는 것이다.

동구청은 11월부터 관광해양특구 지정을 위한 기본 구상에 착수하고, 2023년부터 지역특화발전특구계획을 수립해 2025년까지 지정 신청을 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2026년까지 관광해양특구 지정을 마칠 계획이다.

대왕암공원 북측 해안산책로의 돌출지형인 햇개비에서 수루방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303m, 폭 1.5m 규모의 출렁다리 모습. 동구 제공

이와 함께 대왕암공원 일부 지역 등을 관광지로 지정해 대규모 숙박시설 및 편의시설을 유치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대왕암공원 전체 93만㎡ 중 약 23만㎡ 정도를 공원에서 제척한 뒤 ‘관광진흥법’에 따른 관광지로 지정해 숙박시설(리조트), 관광 휴양·편의시설 등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관광지 지정은 동구청장의 신청과 울산광역시장의 지정으로 가능하다. 내년까지 관광지 지정 신청을 마치고, 2024년까지 관광지 지정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동구청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문화 체육 인프라 조성 및 교육여건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다가 문 닫은 지 수년째를 맞은 동부회관과 서부회관의 공공 체육시설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동부회관은 현재 건물매입을 협의 중이다. 서부회관은 건물 소유주인 현대백화점과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8월부터 매입 및 소유권 이전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남목 일대의 체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 수영장 체육관 생활체조실 등을 갖춘 남목문화체육센터를 2024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김종훈(왼쪽) 울산 동구청장과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지난 7월 시교육청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동구 제공

문화 인프라 향상을 위한 ‘동구문화재단’ 설립, 일산해수욕장 일대를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청년문화의 중심지로 조성, 슬도와 성끝마을 일대에 ‘문화아트플랫폼’ 조성도 검토하고 있다.

교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체험교육시설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노옥희 울산시교육감과 수차례 면담을 갖고 협조를 요청했다. 아울러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립 및 취업을 돕는 지원센터 건립도 추진한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조선업 하도급 관행 개선해야 산업·지역 살릴 수 있어”


"조선업을 되살리려면 사람에 투자해야 합니다."

김종훈(사진) 울산 동구청장은 1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조선업이 오랜 침체를 털어내고 재도약을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산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때"라며 "불합리한 하도급 관행을 개선해 하청노동자도 일한만큼 대우받을 수 있게 해야 산업을 살리고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2016~2018년 있었던 지역 조선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숙련된 기술인력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기술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 시기에 많은 기술자가 타 업종 또는 타 지역으로 유출됐다"며 "지금 해외수주에 성공해 일감은 늘었지만 임금과 복지수준도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신규 청년인력도 찾지 않고 있다. 일손부족과 기술력 저하가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18년 4월 첫 지정이후 4차례 연장된 고용위기지역 지정이 올해 말로 종료를 앞두고 있는데, 정부에 조선업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김 구청장은 "조선업 위기는 구조적이며 고질적인 문제여서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나 한시적인 정책 지원만으로는 개선될 수 없다"면서 "정부와 기업, 협력업체가 함께 참여해 불합리한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임금과 복지를 개선해 우수한 인력이 스스로 찾아오는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제6대 동구청장,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진보당 소속으로 청년시절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투쟁 때부터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는 "일을 하는데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며 동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면서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주민 여러분과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