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참사 현장엔… 그리운 첼로 선율·애틋한 꽃 한송이

입력 2022-11-15 04:04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가 지난 13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 앞 한 화장품 가게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가게는 인근 추모공간을 찾는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주회 등의 행사를 마련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7일째인 14일 참사 현장과 맞닿은 서울 이태원 해밀톤쇼핑몰의 한 화장품 가게 정문엔 형형색색 사인펜과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근처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글을 남길 수 있게 가게 측이 준비해놓은 것이다.

전날 이곳에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흘러나왔다. 참사 후 보름 가까이 영업을 중단하다 다시 문을 연 가게는 매장 한편에 따로 연주 공간을 마련했다. 인근 추모공간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연주회를 갖기 위해서다. 이날 첼로 연주 후에는 아카펠라 공연도 이뤄졌다. 하루 2~3팀씩 20일까지 이어지는 추모 연주회 일정은 꽉 차 있었다.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 일부는 음악 선율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다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가게 앞에서 만난 임수민(27)씨는 “또래들의 황망한 죽음을 추모하러 왔는데, 때마침 첼로 선율과 함께 추모를 할 수 있게 돼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 5일 국가애도기간이 종료되고 11일부터 참사 현장을 가로막던 폴리스라인이 걷히면서 이태원은 일상을 되찾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상인들에게도 참사의 충격은 아직 가시기 전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주회 아이디어가 나왔다. 화장품 가게 관계자는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을 위로하고 가게 직원들의 일상회복을 위해 영업 재개 방법을 고민하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꾸려지는 추모 연주회로 매장을 다시 열게 됐다”고 말했다.

영업을 재개하는 다른 가게들의 고민도 대체로 비슷하다.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무작정 쉬기도 힘든 상황이다. 가게 자체의 운영은 물론이고 종업원들의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참사 현장으로부터 큰길 맞은편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는 참사 다음 날부터 매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국화꽃 한 송이를 무료로 제공하며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7년째 가게를 운영한다는 최모(38)씨는 “이태원에서 영업하는 입장에서, 참사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꽃이라도 건네며 지금은 그저 참사를 추모하고 이태원을 함께 위로하고 싶다”고 덤덤히 말했다.

참사 이후 점심 영업만 했던 이태원 한 한식집도 지난주부터 저녁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 아직 가게를 찾는 이는 많지 않지만 이태원을 찾는 손님을 맞는 것도 추모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60대 최모씨는 “하루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서 속상하지만 주변 상인들끼리 매출 얘기는 따로 하지 않고 조용히 영업하고 있다”며 “찾아오는 손님이 줄었지만 그분들에게라도 최선을 다해 음식을 내드리는 게 추모에 동참하는 일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