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자태로 예쁨받는 고양이지만 야생에선 작은 동물을 사정없이 공격하는 포식자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번식이 빠른 데다 배고프지 않아도 사냥하는 습성이 고양이를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사냥감 중에는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도 적지 않아 생태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천연기념물이자 ‘철새의 안식처’인 홍도 르포를 시작으로 5화에 걸쳐 이 문제를 조명합니다.
한반도 최서남단엔 6.5㎢ 면적의 작은 섬 홍도가 있다. 전남 목포항에서 최고 35노트(시속 64.8㎞)로 달리는 초쾌속선을 타고도 2시간 반을 가야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이 청정의 섬에 도달한다. 천연기념물 제170호인 홍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오랜 세월 철새들에게 귀중한 안식처였다. 한반도를 통과하는 철새들은 보통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등지와 동남아, 호주·뉴질랜드를 오가며 번식·월동한다. 약 1만5000㎞를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섬은 중간기착지로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곳이다. 홍도는 철새들이 태평양을 가로지르기 직전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길목이다. 우리나라에 기록된 조류 570여종 중 약 70%인 395종이 이 섬을 찾는다.
지난달 2일 오전 10시20분 닿은 홍도 선착장에서부터 새들의 자취가 가득했다. 푸른 깃털을 온몸에 두른 바다직박구리가 선착장 천장에 달린 조명 위에 앉아 찌르르르 지저귀며 막 도착한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상공에는 두 날개를 쭉 펴고 먹잇감을 찾는 맹금류도 눈에 띄었다.
홍도 선착장에서 10분쯤 걸어 올라가면 전교생이 3명인 흑산초 홍도분교가 나온다. 이곳을 기점으로 홍도의 정상인 고치산 깃대봉(해발 367m)까지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낮은 관목림이 깔려 있다. 홍도원추리 같은 자생식물도 곳곳에 우거져 있었다.
홍도에서 철새를 연구한 빙기창 박사(한국조류학회 총무이사)의 안내를 받아 ‘야생동물의 길’에 접어들었다. 야생동물의 잦은 이동으로 수풀이 젖혀지며 생긴 통로였다. 5분을 걸었을까. 한 철새의 사체가 발견됐다. 몸집이 한 줌도 안 되는 이 새는 쥐발귀개개비였다. 동남아로 먼길을 가던 중 홍도에 들렀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꼬리 뒤쪽과 목 부위에 어느 포식자의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복부에 지방이 응축된 노란 선이 선명한 것으로 볼 때 탈진도 하지 않은 건강한 상태에서 사흘 전쯤 공격받은 거로 추정된다고 빙 박사는 말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매나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에 당하면 깃털도 다 뽑히고 머리만 달랑 남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큰 외상이 없는 거로 볼 때 섭식보다 살생본능 때문에 죽인 경우 같아요. 그렇다면 범인은 고양이밖에 없죠.” 빙기창 박사는 쥐발귀개개비처럼 주로 땅에서 먹이를 구하는 ‘그라운드 버드’들이 섬에 사는 고양이, ‘섬냥이’의 주요 타깃이 된다고 설명했다.
‘홍도 상징’ 위협하는 섬냥이
찰나였다. 추가 분석을 위해 대야에 담아 숙소 앞 댓돌 위에 놓아둔 쥐발귀개개비 사체를 쏜살같이 달려와 물어 간 건 성체 ‘치즈태비’(노란색 털에 줄무늬가 있음) 코리안 숏헤어종 고양이였다. 마을 건물들 사이로 좁게 난 골목을 따라 급하게 쫓아가자 사체를 버리고 달아났지만 이번엔 출생 3개월도 안 됨직한 또 다른 치즈태비가 사체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장난감을 갖고 놀듯 앞발로 짓이기기를 반복했다.
홍도에서 고양이가 가장 많이 목격된다는 마을 외곽 쓰레기 소각시설 주변에서도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수컷 큰유리새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던 삼색고양이는 기척을 느낀 새가 바다 쪽으로 날아가 버리자 허공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고양이는 철새를 죽인다. 빙 박사 연구 결과 2007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년간 홍도에서 사체로 발견된 조류 130종 1338마리의 사인 중 가장 많은 29.3%(392마리)가 고양이에 의한 포살(잡아 죽임)이었다. 보통 도시 지역에서 가장 빈번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충돌(22.3%)보다 많았고 기름오염(15%)이나 탈진·아사(10.6%)의 2~3배에 달했다. 이 기간 홍도에선 연평균 78.4마리의 새가 고양이에 물려 죽었다는 얘기다. 2009년엔 고양이 포살로 분류된 사체만 40종 189마리였다.
이 지역에서 고양이 포획·방사를 담당하는 황미숙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대표는 “홍도 같은 섬들에 TNR(포획-중성화-방사)을 하러 가면 조류 사체가 한 곳에 여럿씩 쌓여 있는 걸 목격하곤 한다”며 “수컷 고양이들은 사냥한 걸 자랑해 (자기네) 무리를 관리하려고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생태계 파괴 우려
천성이 야생동물인 고양이의 사냥 습성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고양이의 빠른 확산 및 번식과 함께 포식 속도와 규모가 다른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외딴 섬에서는 그 영향이 특히 심각하다. 홍도만이 아니다. 고양이는 이미 전 세계 생태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뉴질랜드 스티븐스섬 사례다. 면적 2.6㎢밖에 안 되는 이 섬에는 1894년 등대 관리인이 처음 파견됐는데 그가 데리고 들어간 고양이 한 마리가 수시로 사냥하는 바람에 멸종위기종이던 ‘스티븐스섬 굴뚝새’가 1년 만에 멸절해버렸다. 멕시코 소코로섬에 서식하던 ‘소코로 비둘기’가 1980년대에 멸종했는데 주범은 역시 고양이였다. 1950년대 중미 온두라스 리틀스완섬에서 ‘리틀스완아일랜드 후티아’라는 설치류가 자취를 감춘 배경에도 새롭게 이주한 고양이가 있었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가 쓴 ‘제주 마라도에서 서식하는 고양이의 개체군 크기 및 행동권 추정’ 논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20여개 섬에서 조류 123종, 포유류 27종, 파충류 25종이 고양이 포식으로 씨가 마를 위기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양이가 이토록 위협적인 존재가 된 건 강한 적응력과 번식력 때문이다. 원래도 대부분의 환경에 적응할 정도로 생존력이 강한데 사람들이 먹이까지 챙겨주면서 야생에 먹을거리가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임신 기간은 두 달로 짧아 1년에 최대 여섯 번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다. 한 번 출산하면 보통 5마리 안팎을 낳기 때문에 외부 개입이 없으면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최상위 포식자의 번식 속도가 이렇게 빠르니 생태계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고양이를 ‘100대 치명적 침입 외래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래종으로 분류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섬 등 생태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서 고양이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가 늘고 있다. 최창용 교수는 “고양이는 충분히 먹은 뒤에도 재미나 놀이를 위해 야생동물을 잡는다”며 “이동 중 섬에 도착한 새들은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친 상태라 쉽게 고양이의 표적이 된다”고 설명했다.
홍도에서 배편으로 30분여 걸리는 흑산도는 도래하는 철새 군집이 홍도와 비슷하다. 흑산도엔 조류를 관찰한 통계가 있다. 면적 19.7㎢로 홍도의 3배쯤 되는 이 섬에선 지난해 모두 35종의 법정보호종 조류가 관찰됐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 5종, 2급 24종이 포함됐다.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로는 노랑부리백로 팔색조 등 19종이 확인됐다. 이들이 모두 고양이의 위협 아래 있다. 최유성 환경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고양이는 천연기념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무작위로 사냥한다”고 우려했다.
홍도는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 120㎞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종다양성이 굉장히 낮다. ‘2018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홍도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수달, 작은땃쥐, 관박쥐밖에 없다. 양서류도 도롱뇽, 청개구리, 참개구리가 전부다. 파충류도 단 5종(도마뱀, 아무르장지뱀, 누룩뱀, 대륙유혈목이, 쇠살모사)에 불과하다. 빙 박사는 이에 대해 “조류에 대한 고양이의 위협이 홍도라는 섬 전체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단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huan@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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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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