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코로나 세렌디피티, 드러난 공복의 실체

입력 2022-11-15 04:02

세렌디피티. 발음 소리가 왠지 청량하고 뜻도 훈훈한 단어다. 우연으로부터 중대 발견이 이뤄짐을 의미한다. 특히 실수나 불행으로부터 얻는 예상 밖의 좋은 결실을 뜻한다. 세균 배양 접시를 완전히 밀봉하지 않아 푸른곰팡이 포자가 밖에서 들어왔던 덕에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 대표적 예다. 그 밖에도 아스피린, 트랜지스터, 고르곤졸라 등이 있다. 극심한 공포와 애절함 속 봉화 갱도에서의 기적 같은 생환과 주변 헌신들이 우리에게 드리운 희망도 그렇다.

코로나19 암영이 3년째 지구를 덮었다. 현재 누적 사망자는 662만명. 코로나로 인한 실제 초과사망 숫자는 평균 3배쯤이라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추산했다. 이 머신러닝 추산법과 유명한 비스쿠시 피해산정법으로 계산한 사망 비용이 작년 말 114조 달러였다(프로젝트 신디케이트). 현재 값을 대입하면 135조 달러니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1.4배다. 롱코비드(확진자 후유증)와 입원 환자의 인지능력 손실에 관한 연구도 나왔다. 지구촌의 먹고살기도 옥죄었다. 소비, 생산, 분배에 끼친 피해가 막대하다. 부양책들이 유발한 인플레와 국가부채 기사들이 빼곡하다. 불행이 단지 이뿐이겠는가.

하지만 세렌디피티가 시나브로 찾아왔다. 마스크를 쓰니 길던 말과 모자랐던 수더분함을 깨닫는다. 꺼렸던 온라인 강의가 꽤 편해졌다. 델타 변이 때 서울 부모님의 점심을 미국에서 친구가 실시간 주문해드린다 했다. 플랫폼 효심에 반해 내게도 곧 배달앱이 깔렸다. K콘텐츠 쪽도 그렇다. 이미 인지도를 높여가던 K드라마와 K팝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해외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대세가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오징어 게임’과 BTS를 쉽게 접하며 매력에 빠졌다. 영화제들에서 돋보인 K영화도 마찬가지다.

국민 공복들의 칙칙한 실체가 파노라마로 쭉 찍힌 것도 값진 세렌디피티였다. 공적 마스크 부족부터 중증병상 포화, 구치소 집단감염, 의료진 탈진, 원정 장례로 국민은 불안했다. 여태껏 일등공신은 꾹 참아준 백성이다. 다음은 우수 의료진의 희생이다. 막강 IT 역량도 한몫했다. 마스크 앱을 개발한 시빅 해커들과 현장 공무원들이 고마웠다. 반대로 컨트롤타워는 연신 허둥댔다. 1·2차 백신 수급, 일관된 거리두기, 병상 확보, 사망자 예측에서 헤맸다. 코로나 터널의 끝점을 줄곧 오판하고선 이내 뭉갰다. 손실 보상과 소외층 돌봄에는 미적댔고 전 국민 푼돈 뿌리기에 매달렸다.

“여기 못 막으면 속초 다 뚫린다고.” 강원도 산불 끄러 모인 전국의 대원들 그리고 주유소 앞 소방관의 글과 사진에 뭉클했다. 결연했고 진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역병과의 장기전 지휘관들에겐 전략 부재와 보신주의가 도드라졌다. 통제 일변도의 의무와 처벌 조항만 냅다 쏟아냈다. 불가항력이라고 억지 핑계를 대다가 돌연 낙관론도 던졌다. 방역 비전문가의 이런 지적들이 그간의 자화자찬과는 판이하겠으나 비로소 전문가들의 칼날 검증 시간이 왔다. 시계열은 물론 횡단면 데이터가 차곡히 쌓였으니 익히 가능하리라.

주인 얕보고도 호기 부린 공복들 행적을 코로나가 잘 기록해줬다. 이제 그들이 내세운 성과들도 다시 짚자. 코로나 누적 사망자 수는 엇비슷한데 한국보다 인구 대국이 여럿이다. 부족한 인프라에서도 어제까지 10만명당 사망자는 우리(57명)보다 적다. 덜 억누르면서도 안전한 K방역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세계 6위 2600만 확진자 상당수가 겪었던 고통을 이미 잊지는 않았는지. 굼뜨다 사달이 나도 일단 버티기하는 고위 공복들과 그 후진적 문화의 쇄신을 주문하자. 이태원 참사에서처럼 그들의 부작위는 우리 삶을 파괴한다. 이 나라의 게임체인저는 항상 국민이란 걸 거듭 깨우쳐 준 것, 최상의 코로나 세렌디피티였다.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