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술패권 경쟁은 국제관계의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 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가 과거의 ‘분업과 협력’에서 ‘경쟁과 자립’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자국 주도 과학기술·디지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과학기술 자립자강과 디지털 실크로드를 공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런 대전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는 지난달 28일 대통령 주재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개최하고 ‘국가전략기술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경제·산업뿐 아니라 외교·안보 측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12대 전략기술을 엄선했다. 여기에 2027년까지 약 25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범부처 차원의 역량을 총결집할 계획이다. 보다 전략적으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술 수준과 시장 경쟁력을 고려한 이른바 맞춤형 전략이 중요하다. 반도체, 이차전지처럼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왔던 기술들은 다른 나라와 격차를 벌릴 수 있도록 민간 주도로 민첩하게 개발하고자 한다. 인공지능, 양자 등 미래산업의 기틀이지만 아직 추격자 입장에 있는 기술 분야는 산학연 협력 토대 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원천기술과 인프라를 확보하고 민간으로 확산해나갈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장세가 빠르고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성이 높은 우주, 첨단바이오 등의 분야는 정부와 산학연이 함께 대체 불가능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산업 규모를 차근차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이 같은 전략 위에 혁신적 연구·개발 방식을 도입해 가시적 성과를 빠르게 창출하고자 한다. 5~7년 안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10개 내외의 국가적 임무를 설정해 민간과 정부가 함께 집중 투자하는 ‘국가전략기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목표 설정부터 기획·평가까지 민간이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사업을 이끌어간다. 국가전략기술 확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차별화된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가 보유하지 않은 기술은 기술 강국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컨트롤타워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에 전략기술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전략기술육성특별법을 제정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전략기술이 성장하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대 전략기술은 국가 생존을 지키는 창과 방패이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이다. 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최고 기업 TSMC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하듯이,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은 물리적 국력을 초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누구나 우리와 손잡고 싶어 하는 과학기술 강국,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리가 만든 국가전략기술은 대한민국이 기술패권 경쟁의 파고를 뚫고 부강한 나라로 가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