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에 나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경찰 지휘부나 행정안전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 올라가지 못하자 일선에서는 ‘꼬리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사 선상에 올랐던 경찰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내부 원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수본은 13일 서울교통공사 종합관제센터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사고 직전 이태원역에 승객이 몰려 위기징후가 포착됐는데도 무정차 통과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수본은 용산경찰서와 용산소방서, 용산구청 직원들을 연일 조사하고 있다. 일선 기관들을 상대로 현장 조치와 사고 후 상황 대응 과정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모양새다.
일선 경찰 사이에선 용산서 정보계장 정모(55) 경감이 지난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후 특수본 수사 방향을 비판하는 기류가 강해졌다. 특수본은 핼러윈 인파 밀집 우려를 담은 정보보고서 삭제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 경감을 지난 7일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를 두고 참사 이후 보고서 삭제 지시가 이뤄졌다면 계장보다 윗선에서의 지시였을 텐데도 정 경감에게 수사 부담이 쏠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경찰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등에 대한 가시적 수사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경찰과 소방, 구청 등 현장에 수사력이 집중된다는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에 “경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경찰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왜 책임을 경찰관에게만 묻고 정부에는 물어서는 안 되는지 답을 들어야 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권한만 누리고 책임지지 않는 윗선에 대한 수사는 전혀 하지 않고 정권 눈치만 보고 현장 경찰만 윽박지르고 있다”며 특수본 해체를 주장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참사 당일 현장 대응 문제보다도 사전에 경력 배치가 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등의 배경과 경위를 면밀히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하지만 특수본은 아직 경력 배치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8일에야 서울청 경비부장실 등을 압수수색해 압수물 분석에 나섰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된 이후 현장 소방관들의 반발도 거센 상황이다.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출동해 현장에서 대응한 최 서장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게 가혹하다는 취지다. 소방공무원노조는 14일 서울 마포구 특수본 사무실을 방문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할 방침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특수본은 “각 기관의 사전계획 수립 여부, 현장대응, 상황조치 및 보고 등에 대한 사실관계 확정이 우선”이라며 “빠른 시일 내 수사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직은 기초조사 단계이기 때문에 일선에 대한 조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