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로 촉발된 공모시장 한파가 ‘IT 기대주’들의 상장계획을 무너뜨리고 있다. 구독 플랫폼 성장기업으로 주목을 받던 밀리의서재마저 기업공개(IPO)를 철회했다. IT기업들의 실적이 줄줄이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미래 성장 가능성만으로도 투자금이 몰리던 시절은 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KT 계열 전자책 구독 플랫폼인 밀리의서재는 지난 8일 상장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밀리의서재는 “현재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이다.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상장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밀리의서재는 IPO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 전자책 플랫폼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상장을 추진하는 사례인 데다,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다는 관측이 나와서였다. 지난해 9월 KT그룹에 편입된 점도 긍정적 요소였다. 밀리의서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모자금이 줄어도 계획대로 상장하겠다”며 상장 완주를 꿈꿨다.
그러나 지난 4~7일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를 예측한 결과, 100대 1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경쟁률을 보였다. 대다수 기관들은 희망가 하단(2만1500원)을 밑도는 2만원 이하의 공모가를 써내면서 밀리의서재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증시 하락과 IPO 시장 침체로 올해 들어 상장을 철회한 기업은 11곳에 이른다. 지난 5월 ‘기대주’로 꼽혔던 SK쉴더스는 상장 철회의 고배를 마셨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보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호황을 맞은 걸 계기로 상장을 노렸지만, 경기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앱마켓 플랫폼 기업인 원스토어 역시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지난 5월에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올해 하반기 대어로 꼽혔던 게임 개발사이자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인 라이온하트스튜디오도 최근 상장 철회를 돌아섰다. 경기침체로 기업가치를 적절하게 평가받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시장에서는 IT업계 전반의 성장성에 ‘회의론 먹구름’이 낀 게 ‘IPO 한파’를 부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IT기업의 경우 현재 실적보다는 성장 기대치가 기업가치에 반영된다. 미래의 실적 예상치를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밀리의서재의 경우 내년 예상 순이익인 130억원을 가정해 기업가치가 평가됐다. 하지만, 최근 빅테크 기업마저 성장동력이 꺾여 실적 악화를 겪으면서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8월 상장을 강행했던 차량 공유 플랫폼 쏘카가 코스닥 입성 후 주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점도 ‘상장 신중론’을 택하게 하는 경고메시지로 작용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적으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기업이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 기업 가치도 높아져 상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상황에서는 성장성보다는 당장 실적이 나오는 기업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성장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IT기업들에 대한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13일 말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IPO 한파 역시 당분간 지속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IPO를 준비해 온 IT기업들은 상장 시기를 ‘미정’으로 남겨뒀다. 밀리의 서재는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을 지속해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