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든 묘비… 무언의 죽음에 대한 애도

입력 2022-11-10 19:23
제공 김리윤

번역자 윤경희는 “‘녹스’는 읽기에 진입하기 전에 이리저리 살펴보기와 들추기의 욕구부터 불러일으킨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녹스’는 읽기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들춰보고 만져보고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종이, 활자, 표지, 제본, 케이스까지 이야기를 표현하며 주제에 복무한다.

관처럼 견고한 케이스 안에 책이 놓여 있다. 책은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연결돼 있다. 펼치면 병풍처럼 길게 이어진다. 왼쪽 면에는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시 101번에 나오는 모든 단어에 대한 사전적 해석이 흐른다. 이 시는 죽은 형제를 위한 10행의 비가이다. 오른쪽 면에는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죽은 오빠에 대해 수집하고 기록한 말들이 조각조각 이어진다. 그의 네 살 위 오빠는 가족을 떠나 20여년간 홀로 해외를 떠돌다가 별다른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죽었다.

시인이자 고전학자이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카슨은 오빠를 추모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책으로 만든 묘비인 셈이다. 카슨은 실낱같은 실마리들을 수집하고 추억하며 오빠를 더듬어나간다. 그것은 단어 하나 하나를 사전으로 찾아가며 고대 시 한편을 번역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밤’을 뜻하는 ‘녹스’는 ‘한 사람의 역사 안에서 배회하기’를 ‘한 낱말의 의미들 사이에서 배회하기’와 겹쳐 보여준다. ‘무언’으로 남은 죽음 앞에서 애도란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 카슨의 대답이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