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제외하고 사도 바울만큼 스펙터클한 인물이 성경에 또 있을까.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가말리엘의 지도로 유대 전통은 물론 그리스 철학에 능통했던 바리새인이자 로마 시민권자였던 사울.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처형의 증인이 됐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해 기독교의 뿌리를 뽑으려 했다. 그러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뒤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로 단번에 뒤집혔다.
바울로 거듭난 이후엔 지중해 연안의 안디옥 드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 에베소를 두루 다니며 전도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끝내 붙잡혀 로마에서 연금생활을 했고 잠시 석방됐다 다시 체포돼 로마에서 참수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울 이전 지식인 누구도 이처럼 고대 세계 전체를 두 발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설명한 긴 편지를 쓴 이는 없었다.
영화 ‘바울’(Paul, Apostle of Christ·2018)은 그의 로마 감옥 마지막 나날들에 집중한다. 40대에서 한 대 뺀 태형을 여러 차례 당해 등에는 불에 덴 듯한 채찍 자국이 선명하고 척추가 휘어버린 볼품없는 늙은이로 묘사된다. 신약 성경을 절반 가까이 썼으며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최고의 신학자이자 지중해 전역을 돌고 마침내 로마 제국 안방에까지 들어온 위대한 전도자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성실한 기록자이자 의사인 누가가 더 빛난다. 누가 역의 배우 제임스 카비젤은 앞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예수님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말년의 바울은 영화에 묘사되듯 궁지에 몰렸다. 그가 개척한 교회들은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사도들은 그에게 냉담했으며 예루살렘에선 군중에게 맞아 죽을 뻔하고 그를 살해하기 위한 유대인 암살단까지 만들어졌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는 바울의 고백이 떠오른다.
그러나 바울이 남긴 편지는 오늘도 수억명의 그리스도인이 읽고 있다. 그의 전체 여정을 들여다보는 데는 존 폴락 목사의 전기 ‘사도 바울’을 추천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인 폴락 목사는 미국의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의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바울의 무수한 전기들 가운데 르포 형식으로 바울의 스펙터클한 생애를 담았다는 점에서 독보적 가치가 있다. 신약 성경 거의 절반을 다시 읽는 이점은 덤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